선물
내가 물리적으로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시간과 돈밖에는 없다. 거기다 ‘시간은 금이다’가 사실이라면 나는 시간밖에 가진 것이 없는 존재가 된다. 의사, 목수, 공무원, 직장인, 기술자, Plumber 모두 시간당 노동의 대가를 돈으로 환산해서 돌려받는 사람들이다.
변호사란 직업도 서비스 업종이기에 가진 자산이라고는 시간밖에 없다. 상담, 전화통화, 법정에서의 변호, 자료조사, 서류준비 등등 직업상 모든 업무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정해준 하루 24시간의 일부를 축내는 활동들이다. 그런데 변호사에게 일을 의뢰하고 그 대가로 근사한 저녁식사를 한턱 ‘쏘겠다’는 엉뚱한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더 많은 시간을 빼앗겠다는 협박이 아닐까. 실제로 근사한 식사를 대접받은 적은 한손에 꼽을 수 있고 나머지는 육개장, 설렁탕, 돌솥 비빔밥 수준이었다.
변호사란 직업은 관료직이 아니어서 뇌물을 접하기 쉬운 직업이 아니다. 자신에게 업무를 맡긴 의뢰인으로부터 받는 것은 뇌물이기 보다 선물이기에 그렇다. 변호사 수임료 대신 주는 것이 아니라 고마움에 정성어린 선물을 하는 고객들이 많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더러 있다. 중세기도 아닌데 변호사에게 물물교환을 제의하는 사람들도 예상외로 많다. 법정문제를 해결해주는 대신 올리브 오일을 주겠다는 이탈리아인, 해외여행 항공권을 주겠다는 그리스인, 집을 지어주겠다던 유고슬라비아인, 집을 청소해 주겠다는 한국인 등등 별의별 제안을 해온다.
한 호주남자의 일을 맡아준 적이 있었는데 이 친구 심성이 순수하고 인간성도 ‘짱’이라 어울리면 무척 흥겨운 상대였으나 술에 약한 것이 그의 치명적 약점이었다. 술만 마시면 고마운 생각이 든다고 삶은 새우를 사들고 사무실로 갖고 오는 것이었다. 어느 금요일 느즈막한 시간에 새우를 들고 찾아와 사무실 직원들 모두를 먹여주는 에피소드를 벌였다. 술인지 마약인지 제정신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손수 껍질을 벗겨서 건네주는 새우 5kg을 꾸역꾸역 다 받아먹고 나서야 돌려보낼 수 있었다. 전과 다수범 출신이라 길거리에서 마주칠까 불안한 남자다.
선물도 다양하지만 일단은 술이다. 위스키, 포도주, 고량주, 보드카, 안동소주. 주로 독주 수준이고 맥주는 없다. 2년을 소모하여 대형 재판을 치룬 마약범 남편의 소송기간 중 고급과자를 직접 구워 갖다 주는 이태리 아주머니도 있었다. 먹다 못해 버리기까지 했건만 사정을 알턱 없는 그는 헌신적으로 선물하곤 했다. 친구가 정육점을 운영한다고 양다리 다섯짝을 가져온 호주 청년도 있었다. 기가 막혔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한국인 고객들로부터 받는 비타민, 활명수, 에너지 드링크, 과일 주스도 고마운데 직접 담군 김치 5kg를 호주인들로 가득찬 시내 사무실로 가져온 한국인 아주머니는 감동 그 자체. 퇴근길 만원 기차에서 풍겨나는 김치향기로 김치보다 붉어진 내 얼굴을 보았을까. 한국산 담배 6갑을 가지고 공항에서 곧장 사무실을 찾아온 한국 여인도 있고 과일주머니 들고 찾아온 젊은이도 있었다.
살인혐의로 형사재판을 받은 고객이 있었다. 도청된 테이프까지 준비된 완벽한 경찰의 수사를 받은 사람으로서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어보였다. 하지만 재판은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결국 우리의 ‘승리’로 결말이 났다. 믿기 어렵게 좋은 결과였다. 국선변호사로서 변호를 맡았기에 우리의 수수료는 정부가 해결해 주었고 손님은 자신이 그렸다는 수채화 한 점을 선물로 남기고 돌아갔다. 먹구름으로 가득 찬 검은 하늘, 피비린내 나는 듯한 붉은 바다, 그리고 해변가에 남겨진 사과와 바나나… 살인범 누명을 간신히 모면한 정신 이상자의 작품이기에 충분하였다.
면책공고Discla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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