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씨의 ‘Pachinko’, 찰스 디킨스의 명작 다시 읽기
역사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여 교과서에서는 종종 하지 못한 방식으로 지난 시대 상황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이 장르의 소설은 역사적 사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문화적 통찰력을 제공하며 세계 각지의 풍부하고 매혹적인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문단에서는 어느 순간 소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사라지고 재테크를 비롯한 실용서가 그 자리를 차지한 독서 풍토를 우려하고 있다. 다양한 출판물 가운데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서 하나면 언급하자면, 서울대 국문학과 신형철 교수의 산문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소설의 가치’를 ‘인식의 생산’이라고 제시한 대목이다. 신 교수는 “어떤 시대든 사람들은 소설로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한다. (그렇기에 소설의 중요 가치는) ‘인식’을 ‘생산’해내는 데 성공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고 썼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관심을 두지 못했던 주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인식’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 소설의 주요 역할이라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 역사 소설은 픽션의 흥미로움과 실제 역사적 배경을 결합한 장르이다. 이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허구의 인물, 가상의 이야기와 섞어 과거의 한 시대를 더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게 인도한다.
신 교수가 말한 ‘소설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흥미와 감동을 선사하는 8편의 역사 소설을 추천한다.
■ Pachinko / Min Jin Lee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살던 양진과 훈이 부부, 이들의 딸 선자에서부터 시작해 일본으로 이주한 선자와 그녀의 아들, 그 아들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일가족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겪는 멸시와 차별, 그 안에서의 처절한 삶을 심도 있게 그렸다.
미국계 한국인 작가 이민진씨는 이 작품을 통해 일본에서 살아온 한인 이민자의 덜 알려진 역사, 일본 사회의 체계적인 차별에 직면한 재일교포들의 회복력, 복잡한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한다.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곧바로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해 뉴욕타임즈, BBC 등에서 ‘올해의 책 10’에 선정됐으며 전미도서재단(National Book Foundation)이 주관하는 미국 도서상(National Book Award) 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 All the Light We Cannot See / Anthony Doerr
넷플릭스(Netflix) 영화로도 제작된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대를 배경으로 시각 장애인 프랑스 소녀 마리 로레(Marie-Laure)와 독일 소년 베르너(Werner)의 얽힌 삶을 따라가는 내용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는 이들의 회복력, 도덕적 문제,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 나치의 선전, 전쟁의 인적 비용까지도 생생하게 묘사한다.
■ The Nightingale / Kristin Hannah
2차 세계대전 중인 프랑스를 배경으로 두 자매의 삶을 감동적으로 기술한 소설이다. 한 자매는 독일에 맞선 프랑스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싸우는 동안 다른 한 자매는 나치가 점령한 마을에서 가족을 보호하고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소설은 전쟁 중 레지스탕스 운동에서 여성의 숨겨진 역할과 그들이 치른 값진 희생을 조명한다.
■ The Book Thief / Markus Zusak
독일계 부모를 둔 호주 작가의 소설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Death’의 나레이션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시대 배경, 죽음의 공포가 사람들을 지배하지만 도난당한 책에서 위안을 찾고 다른 이들과 이를 공유하는 어린 소녀 리셀(Liesel)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Holocaust)에서 독일인의 삶에 대한 가슴 아픈 관점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의 힘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Homegoing / Yaa Gyasi
특히 미국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이 소설은 두 이복자매와 300년에 걸친 그들 후손의 삶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노예로 팔린 자매, 가나(Ghana) 남은 다른 자매와 그 후손의 삶을 통해 대서양 노예무역, 이것이 아프리카와 미국 사회에 미친 장기적 영향, 체계적 억압의 개인적 비용을 탐구한다. 뿐 아니라 노예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는 이의 유산과 잔해, 인종차별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 Wolf Hall / Hilary Mantel
역사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가 힐러리 맨틀(Hilary Mantel)에게 맨부커상(Man Booker Prize)을 안긴 이 소설은 영국 종교 개혁의 격동기, 헨리 8세 왕(King Henry VIII) 궁정의 핵심 인물이었던 토마스 크롬웰(Thomas Cromwell)을 통해 튜더 왕조(House of Tudor)의 정치적-종교적 변화와 권력, 그 영향력의 복잡한 작용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맨틀 작가는 맨부커상을 두 차례 수상한 최초의 여성으로, 깊은 역사 연구와 빼어난 상상력,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 A Tale of Two Cities / Charles Dickens
프랑스 혁명 시대를 배경으로, 그 원인과 결과를 포함하여 18세기 프랑스의 사회적, 정치적 혼란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비극적 사건들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그린다. 이 소설에서 파리는, 걸핏하면 귀족을 단두대에 올리는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런던은 이런 혼란에서 동떨어진 안정적 세상으로 대조된다. 작가 찰스 디킨스는 혁명의 원인이 된 프랑스 지배층의 지나친 사치와 수탈을 비판하면서도 점점 광기에 물들어가는 혁명군의 비이성적 행태, 단두대의 잔혹함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 The Red Tent / Anita Diamant
구약 성경 시대를 배경으로 야곱의 유일한 딸인 디나(Dinah)의 눈을 통해 고대 여성들의 삶을 재구성한다. 당시 여성의 삶을 탐구하며 관계, 의식, 회복력에 초점을 맞춰 디나의 이야기에 작가의 목소리를 더한 이 소설은 여성의 역할과 투쟁을 중심으로 성경 시대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소설 출간(2007년) 7년 후인 2014년, 미국에서 TV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어 크게 주목받기도 했다.
김지환 기자 herald@koreanherald.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