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반향초(茶半香初)처럼
친구가 말했다. 친구란 모름지기 힘들 때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하지만 정작 힘들 때 도움을 청하면 바쁘다고, 나도 힘들다고 핑계를 댄다. 그래서 우린 알고 있다. 말하고 행동하고는 천지 차이가 나는 게 사람이라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리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하지만 정작 이웃이나 친구가 곤경에 처하거나 힘든 환경이 닥치면 나 몰라라 한다. 어쩌면 힘든 상황보다도 그런 사람들의 무관심이나 외면에 더 상처를 받는 건지도 모른다. 일이라는 것도 그렇다. 일로, 능력적으로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사람들의 관계가 더 힘들게 할 때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한 때 잘 될 때는 사람도 많고 돈도 많고 무슨 일을 해도 성공한다. 공연이란 것을 예로 든다면 그렇다. 준비 과정에는 많은 사람이 관계를 맺고서는 영원히 이 일을 할 것처럼 군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나면 하나둘 떠나간다.
기차역에 앉아서 기다리던 기차를 일부러 떠나보낸 적이 있다. 그 수많은 사람이 물결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 광경을 보면서 인생의 많은 인연이 한꺼번에 몰아 닥쳐들었다가 한순간 떠난다는 것을 알았다. 잠시 후 기차역에는 다시, 한 명 두 명 모이더니 어느새 또 많은 사람이 다음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환영 장면 장면이 상세히 떠올랐다.
<탈무드>에 보면 친구에 대한 이런 글이 있다.
‘아무리 친한 벗이라도 너무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친구는 불타고 있는 석탄이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 몸을 따뜻하게 덥힐 수 있지만
너무 가까이하면 몸을 데고 만다.
이는 아내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인간을 독차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
나쁜 친구를 그림자에 비유하기도 했다. 양지에서는 늘 함께하지만, 음지로 들어서면 순간 언제 곁에 있었나 싶게 사라지고 마니까.
한국에서 극단을 하는 친구가 말했다. 연극을 놓아야 할 만큼 어려운 상황에 놓여서 숨조차 쉬기가 싫다고. 배우들은 배우들대로 다른 곳에서 연기한다고 가고, 남은 배우들은 연습한다고 하지만 실재적으로 극단은 문은 닫아야 할 형편이라며 하소연했다.
같이 울어주고 같이 속상했던 것은 여기 상항도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 위로도 해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재정적으로도 도와줄 수 없는 이곳 사정도 말하지 못했다. 다만 이 것 하나, 80년대 한국 영화판을 주름잡았던 영화감독이 시드니 한 번 온 적이 있는데, 사석에서 해준 말이 생각난다.
‘이 바닥에서는 미친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돼. 그 미친 사람은 변하지 않거든. 오로지 이거 하나로 밀고 나가니깐.’
다반향초처럼 말이다. 차를 우려 마신지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그 향기가 처음과 같다는 뜻의 다반향초처럼, 늘 한결같은 원칙과 태도를 지켜나간다면, 한 번 먹은 마음 그리고 꿈을 지켜나간다면, 지금의 처절하고 열악한 상황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기성찰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인 거 안다. 자신만의 소신과 삶의 철학을 갖는다는 것, 즉 그 일에 미치지 않고는 이어 나가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 다반향초를 지니고 있다면 반드시 찾을 것이다.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스스로를 경계하면서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반나절을 우려내도 향기가 처음과 같은 차를 만나기 쉽지 않은 것처럼, 먼저 다반향초처럼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강해연 / 이유 프로덕션 & 이유 극단(EU Production & EU Theatre) 연출 감독으로 그동안 ‘3S’, ‘아줌마 시대’, ‘구운몽’, ‘구운몽 2’ 등의 연극과 ‘리허설 10 분 전’, ‘추억을 찍다’ 등의 뮤지컬, ‘Sydney Korean Festival’, ‘K-Pop Love Concert’ 외 다수의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