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아대고 깨뜨리자– 군함도, 소녀상 건립 그리고 독도
줄탁동시. 닭이 알을 품었다가 달이 차면 알 속의 병아리가, 안에서 껍데기를 깨려고 여리디 여린 부리로 힘을 다해 쪼아댄다. 병아리가 안에서 쪼아대는 것을 ‘줄’이라고 하고, 어미 닭이 쪼아대는 소리를 듣고 밖에서 부리로 알껍데기를 깨뜨려 주는 것을 ‘탁’이라 한다. 이렇게 쪼아대고 깨뜨려는 줌으로써 새 생명의 부화를 돕는 것을 줄탁동시라 한다. 결과적으로 안팎의 두 존재의 힘이 함께 작용해야지만,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에서도 대본은 훌륭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안 좋은 결과를 낼 때가 있다. 대본은 엉망이었는데 연출이 기가 막히게 된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안 좋은 결과를 탄생시킨다. 대본, 연출 모두 흥했어도 배우가 연기를 못했으면 작품은 망한다. 그야말로 3박자가 줄탁동시처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도 줄탁동시가 필요하지만, 외부적인 것도 많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데는 3박자도 필요하지만, 밖에서 깨뜨려줄 제작비의 재정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작품은 탄생할 수조차도 없다.
최근 한국에서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가 개봉되었다. 스크린 점유 문제점, 상업 영화이다 보니 역사의식보다는 탈출 스토리에 집중 한 점 등이 쟁점이 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기간이 40년이다. 광복된 지 70년이 지나간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일본의 수탈, 억압, 전쟁, 겁탈 등 반인류적인 범죄에 대해서 국가적으로, 민간적으로 피해자들이 배상을 못 받고 있으며 제대로 된 사과조차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연극, 영화로 만들거나 민간단체들이 큰 목소리로, 군함도의 강제징용 이야기, 전쟁 위안부 소녀들의 이야기 들을 알리기 위해서 병아리처럼, 이런 사실들을 부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껍데기를 쪼아대기만 하는 상황이다.
얼마 전 참 의미 있는 공연에 초대받아 다녀왔다. 공연장도 너무 좋고 공연 내용도 호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한국 국악 공연이었다. 공연 내용이나 연출은 좋은데 그보다도 관객들의 ‘탁’이 동시에 맞아떨어지지 않은 것이 더 안타까웠다. 공연 주최를 보니 공연목적은 한국의 ‘독도’의 상황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공연 자체의 무대 연출이나 공연자들의 공연은 기술적인 문제들이다. 원초적인 것은 관객들의 관람이다. 공연이 끝나고 들은 이야기여서 사실 여부를 가릴 수가 없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티켓을 사지 않고 초대를 받아서 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초대받은 것이 부끄러웠다. 교민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공연은 무조건 티켓을 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초대권을 준다고 하니 넙죽 받았다. 국악 공연은 특히나 흔히 볼 수 없기에 간절하게 받았다.
500석의 극장에 1부 2부 공연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다. 공연 시작하기 전에 객석을 보니, 빈자리가 처연하게 보였다. 이렇게 비싼 공연장에 이렇게 좋은 공연에 이렇게 뜻있고 의미 있는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주제를 알리는 데 왜 한국 사람들의 관객이 많이 없는 걸까? 차고 넘쳐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 했다. 게다가 초대를 받고도 오지 않는 것은 어떤 마음 들이며, 1부 끝나자마자 객석을 뜨는 이유는 뭘까. 유료 공연임에도 무료 공연처럼 행해져야 하는 사실이, 계속해서 공연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계속해서 1.5세대 2세대들에게 한국 문화와 예술을 알려주고 무대를 만들어 유료 티켓을 행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이 시대 이 호주 교민사회의 실체가 드러나 마음이 참으로 무거웠다.
혼자서 부화하는 병아리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혼자 쪼아대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온 병아리는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 온몸에 멍과 상처, 부리뿐만이 아닌 알을 깨뜨려 줘야 했을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머리도 정상이 아닐 것이다.
쪼아대고 깨뜨리는, 알과 어미 닭의 공동작업의 순간, 줄탁동시의 작용이 이루어진다. 즉 모든 생명은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비정상의 현실 속에서 열심히 부리를 쪼아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방법과 대안은 반드시 있으리라 본다. 그곳이 바로 깨뜨릴 수 있는 곳이 될지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강해연 / 이유 프로덕션 & 이유 극단(EU Production & EU Theatre) 연출 감독으로 그동안 ‘3S’, ‘아줌마 시대’, ‘구운몽’ 등의 연극과 ‘리허설 10 분 전’, ‘추억을 찍다’ 등의 뮤지컬, ‘Sydney Korean Festival’, ‘K-Pop Love Concert’ 외 다수의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