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에 숨어 있는 욕망의 권력 찾기
극단에 들어온 이들 중 10년을 넘게 같이 연극을 하는 단원들도 있지만, 겨우 몇 개월 또는 1-2년 버티다 나가는 이들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3년 전에 작품같이 했었던 친구들을 길거리에서 만나기도 하고, 3개월 전 작품을 같이 했던 친구를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한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추억을 되새기지만, 지금 시작하는 작품이나 공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서로 겉돈다.
“이번에 쇼그맨 공연한다. (진지하게)”
“아 그래요 (건성으로)”
“이번에 시드니 코리안 페스티발 공연해!!! (신나서)”
“아 그렇구나 (무관심으로)”
같이 공연 연습할 때는 모든 것이 함께였다. 밥을 먹어도 함께, 술을 마셔도 함께, 눈물과 웃음이 난무할 때도 함께.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마냥 어색하다.
극단에서는 함께, 모두들, 같은 꿈을 꾸었다. 같은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우린 신념이란 것과 열정이라는 것도 같이 키웠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함께라서, 힘들어도 힘들지 않았다.
그래서 연극이란 꿈을 진심으로 대했고, 소중히 여겼으며, 이룰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 여겼다. 그런 신념을 만들었고 그것이 열정이 되었으며, 나아가서는 극단을 이끌어 나가는 경쟁력의 원천이라 믿었다.
하지만 공연이 하나둘씩 끝날 때마다 한두 사람씩 극단을 나가고, 또 새로운 멤버가 교체된다. 이런 사실은 늘 있는 일이라서 하나의 연례행사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유가 뭔지도 알고, 사연이 뭔지도 알고, 사실이 뭔지도 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끊임없이 우리들의 결핍감을 자극한다. 자극이 된 사연은 욕망을 창출한다. 그리고 사실은 그 욕망으로 하여금 권력을 향해 달려가도록 부추긴다. 즉 이유, 사연, 사실이란 것들은 정작 욕망의 권력에 치부되는 것 투성이다. 삶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가 우리들의 나약함이나 무기력감 즉 부정적인 신념을 움직이게 하는 권력들 말이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사랑에 씌워 놓은 환상을 한 꺼풀만 걷어 내거나, 가식처럼 만들어 놓은 휴머니즘, 예의, 도리를 걷어내면, 뭐가 있을까? 원초적 본능. 벗고 있는 자신을 상상했을 때 어떻게든 내 몸을 가리고 싶은 본능은 욕망을 자초한다. 나 자신을 그대로 보여준다는데 이미 우리는 낡고 낡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이 싸우고, 욕하고, 상처를 주고, 왜 서로 미워하는 하는가? 그건 원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심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손해 안보고 싶고, 조금이라도 상처 안 받고 싶고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고 싶지 않은, 욕심 그리고 그 욕심은 바로 욕망으로 연결된다.
아울러 그 욕망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권력과 일맥상통한다.
사랑도, 우정도, 의리도, 충성도 한 꺼풀만 벗기면 결국엔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 자신에게 필요한 것에 의해 움직이는 허망한 권력 때문이다.
그래서, 그래서 하는 말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신념과 열정이 중요하다. 신념은 분명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을 통해서 각자가 가진 신념의 방향이 결정된다. 즉 자신의 의지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등 기본적인 자아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주변 환경으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한계를 규정했던 신념들에 의문을 품고 하나씩 바꿔나갈 수 있어야 한다.
아니, 바뀌어야 한다. 결국엔 신념이고 운명이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연극들을 하고자 들어왔던 많은 극단 단원들도, 처음엔 대단한 ‘신념’(예술을 향한 자기 자신의 희생)을 만들었지만, 주변 환경에 지쳐 부정적인 신념과 태도(손해 보는 기분, 희생하기 싫어지는 욕망)가 만들어지고, 그것에 따라 행동(급기야 극단을 나가는)하며 그에 따른 ‘결과’(차원이 낮아진 예술에 대한 생각)가 나타났으리라 본다.
누구나 신념이 있고 열정이 있어 일하고, 공부하고 자기 일을 좋아하며 즐기면서 하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환경에 현혹되어서, 자꾸 되돌아보게 된다. ‘왜? 하필? 내가?’라는 신념에 숨어 있는 욕망의 권력이 그야말로 권력을 휘두를 때가 있다. 이때, 자신을 이끄는 원칙이란 곧은 신념을 생각하길 바란다. 곧은 신념과 흔들리지 않는 신념은 우리가 꾸는 꿈이란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고, 욕망을 버린 순수한 청춘의 열정은 불가능을 가능케 할 것이다.
꿈을 버려도 살 수 있다. 욕망에 꺾인 신념을 바꿔도, 오늘은 여전히 가고 내일이 온다. 하지만 인생은 한 번뿐이다.
욕망의 권력 때문에 사는 내가 아닌, 신념에 찬 단 한 번의 인생. 그 인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 생각만 해도 인생은 벅차고 찬란하다.
강해연 / 이유 프로덕션 & 이유 극단(EU Production & EU Theatre) 연출 감독으로 그동안 ‘3S’, ‘아줌마 시대’, ‘구운몽’ 등의 연극과 ‘리허설 10 분 전’, ‘추억을 찍다’ 등의 뮤지컬, ‘Sydney Korean Festival’, ‘K-Pop Love Concert’ 외 다수의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