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하는 사람이 인생에 끼치는 영향 1
금요일 저녁, 모두 ‘불금’이라고 여기저기 약속하는 시간, 나는 <구운몽 2>와 함께 연습실에 틀어박혀 있다. 구운몽 2란? 여자친구 이름이 아니다. 여자친구나 애인을 상상했다면 빨리 수습하시길. 이번에 올리게 되는 연극제목이다. 2년 전 전작으로 올려졌던 구운몽이 관객들의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탄생되는 속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생각했다. 차라리 연극하면 떠오르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나 희극 같은 햄릿,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하다못해 한여름 밤의 꿈같은, 내로라하는 대부작품들을 연상하면 상당한 기쁨과 재미를 안겨줄 거라고…
하지만, 하필이면 극단에서 만든 창작품 <구운몽 2>는 뭐란 말인가. 그런데 현실적으로 안 된다 못한다 말도 못하고, 대본을 들고서 주야장천 대사를 외우고 있다. 이참에 다른 극단으로 이적이라도 할까 잠시, 아주 잠시 생각했었는데, ‘배우의 의리와 자긍심’이 뒷덜미를 잡는다.
도무지 <구운몽 2>에 정이 안 간다. 대본 자체가 친밀감이 없다. 하지만 대본이란 놈은 나를 늘 노려본다. 어느 때는 소리까지도 낸다. 마치 극장에서 나는 소리처럼 사람들이 움직여서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아, 나, 참, 오늘 ‘불금’이라 정신줄 놓고 술도 마시고, 친구도 만나고 싶은데 뭐하는 짓인가 싶다.
그래서 연습실에 콕 박혀서 움직이지도 않고 있다. 호흡 연습, 발성 연습은 마쳤지만 대사 연습이 손에 안 잡힌다. 그렇게 대본을 옆에 둔 채, 내가 맡은 역할의 이름을 본다. 사기남이다.
사기남은 거지들의 왕초, 허풍쟁이고 허세가 많지만 문제 해결을 잘한다… 라고 등장인물 옆에 버젓이 쓰여 있다. 허풍쟁이이고 허세가 많지만 문제 해결을 자알 한다고? 나 원 참, 더 자세히 써 놓으면 안 되나, 대본을 쓰는 작가란 인간들은 디테일의 미학을 모른다. 그저 캐릭터 하나 만들어 놓고 우주가 생성된 것처럼, 뜬구름 잡기로 설명이 없다. 캐릭터를 구축해 나가는 건 다 배우가 알아서 해야 한다. 물론 배우가 캐릭터에 대해서 연구, 조사, 분해 등등 해야 하지만, 데이터 마냥 모든 행동에 대한 지문들이 나열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더 끔찍한 것은 연습기간 동안 여자 친구와 헤어진 거다. 그래서 기분이 영 안 좋다. 돌아온 솔로. 연극 연습한다니깐 여자 친구는 같이 연습할 수 없다고 이별을 종용했다. 이런 계십장생같으니.
전화로 여러 번 달래보다가, 아양 떨다가 음식물들과 물건들을 상납했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협박하고 저주를 내렸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배우이다 보니 감성과 감정이 남보다 앞서 달렸다는 것을 늦게야 깨우치고 후회했다. 포기해.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연극을 포기해, 라고. 다 끝난 일이라고.
아 나는 몰랐다. 그녀가 나를 이렇게 박차고 떠날 줄 몰랐네 였다. 아니 내가 몰랐다. 그녀 대신 연극을 택하게 된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는 것을. 솔직히 말하면 ‘이런 된장 맞을’이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그녀를 찾아가 평생 빌어볼까도 생각했다. 그래서, 그러면 안 되지만 몰래 카메라 형식을 빌리기로 했다. 여자 친구의 친한 친구를 써먹기로 했다. 내가 누구인가? 연기의 신?은 아니지만 연기의 신발 정도는 신을 수 있는 배우이다.
자, 저기 여자 친구의 친구가 그녀를 데리고 나타나는 순간이다. 여전히 어쩌면 저리도 아름다울까. 역시 나는 보는 눈이 남다르다 생각했다. 그런데 카페로 들어오는 그녀. 아니 저건 무슨???
(투 비 컨티뉴~ 연극을 하는 사람이 인생에 끼치는 영향 2에서. )
강해연 / 이유 프로덕션 & 이유 극단(EU Production & EU Theatre) 연출 감독으로 그동안 ‘3S’, ‘아줌마 시대’, ‘구운몽’ 등의 연극과 ‘리허설 10 분 전’, ‘추억을 찍다’ 등의 뮤지컬, ‘Sydney Korean Festival’, ‘K-Pop Love Concert’ 외 다수의 공연을 기획,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