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를 낳고 싶다
“너도 옆머리에 서리가 하얗구나”
”염색 안 하면 별 수 없어요”
카카오톡으로 내 사진을 본 막내 이모의 ‘탄식’ 메시지에 ‘염색’으로 둘러댔다. 아직도 철이 없어 보이는 조카의 머리가 희게 변한 게 놀랄 일이었나 보다. 요즘은 거울 보기가 꺼려진다. 어릴 때 동네에서 보았던 추레한 아저씨가 나를 멀뚱거리며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60대 청춘’이라고 인생 후반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모작을 넘어 삼모작 시대라고 열변을 토하기도 한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앞으로 50년이 남았다고 한들 뭐가 그리 다를까 싶다. 눈 한 번 감았다 뜨니 어느새 중년이다. 어릴 때는 그토록 느리 느릿 간다고 불평했던 시간이 아닌가? 덧없이 흘러간 세월은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한 인생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시간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을 붙잡고 나만의 고유한 의미의 집을 짓는 것은 오롯이 나의 의무이다.
현존하는 존재자로서 나를 만나는 일은 과거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으로 이어졌다. 기억이 있는 나이까지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나는 수많은 시점을 살아간 무수히 많은 과거의 나를 만났다. 둘 사이에 쉴 새 없이 대화가 오갔다.
“그때 넌 왜 그런 결정을 했니? 바보야! 바보! 너 때문에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 줄 아니?… 그건 참 잘 했어. 어쩜 어린 나인데도 그렇게 열심히 살았니?… 슬프고 힘들었겠다. 어떻게 견뎌 냈니?”
“너에겐 미안한 게 많아. 내가 바보짓 자주 했지. 설마 네가 그렇게 어려움을 겪을 줄 몰랐어. …별 생각 없이 했는데 너에게 칭찬까지 받다니 기쁘네. 어릴 때 나만큼 기특하게 공부한 사람 별로 없어… 그래 죽고 싶었는데 미래의 네 생각하며 참았어.”
과거의 오류와 현재의 참담함은 나를 나와의 싸움으로 몰아붙였다. 후회하면서 한심해서 어쩔 줄 몰랐다. 저마다 상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같이 비난하며 싸우다가 나중엔 서로가 불쌍해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마음에 들지 않고 떨쳐 버리고 싶어도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는 같은 나였다. 그 사실을 싫어할 수 있으나 한순간도 부정할 수 없었다.
하나가 된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는 첫 아이를 기다리는 젊은 부부처럼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미래의 나에게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다. 50대 중반 아저씨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될 그 아이의 운명을 안타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옆머리가 하얗게 변했으나 아직 정수리에는 시커먼 머리털이 무성하다. 힘에 부치는 일이 많아져도 열심히 운동하면 나름대로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나는 여전히 하루하루를 새로운 시간으로 맞이할 수 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손잡고 역사의 퍼즐 한 조각을 이루는 미래의 나를 낳아 키우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