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한국문화 수업을 하던 중의 일이었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우리나라를 찾아볼까?’ 라는 질문에 한 아이가 당당하게 나와서 호주를 손가락으로 딱 가리키는 순간 신선한 충격이 일었다. ‘우리나라’가 나와 아이들에게는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바로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의 모국, 우리 모국의 말이 얼마나 멋있는지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하지만 호주한국학교가 아니었다면 처음 호주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길이 막연하고 힘든 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학부모들은 교사들이 수업하고 바로 집으로 가는 줄로 알다가 수업이 끝난 뒤에도 학교에 남아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적잖이 놀라는 것 같았다.
사실 수업은 교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토요일의 일과 중 하나이다. 토요일은 수업 전 미팅으로 시작해서 수업 후 교사회의까지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가 버린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교사들은 좋은 교수방법을 공유하고 또 새로운 방법이 있으면 같이 배우며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방법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그간의 이런 시간 속에서 교사들의 노고가 호주한국학교의 탄탄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발전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단언컨대 그중 최고는 한글 수업단계에 따른 교수법이 아닐까 한다. 이는 처음 호주한국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에게 큰 지침이 되어주었다. 한글 수업에 단계를 나눈다는 것은, 교사에게는 정확한 수업의 목표가 되며 아이들에게는 단계적으로 한글을 깨우칠 수 있는 좋은 교수 방법이라 생각한다. 우리 학교의 체계적인 시스템은 이미 교사와 학생들에게 검증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또 단순히 한글을 가르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한국문화 수업, 특히 지난해에 진행했던 ‘즐거운 한국문화교실’ 등 매해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교사들은 매주 각 반의 학생들에게 맞는 교재를 만들어 매주 학생 수준을 점검하고 적용하며 더 나은 수업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수업을 진행함에 있어서도 단 한 명의 아이도 놓치지 않게 교사는 모든 아이의 워크시트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집으로 돌려보낸다.
즐거운 한국문화교실을 진행하는 동안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까? 조금이나마 우리의 문화를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이런저런 의문과 조바심을 가지며 시작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아이들에게는 지루할 수 있는 언어예절이 재미있는 역할극으로 소화되고, 또 어려울 수 있는 한국위인 배우기는 재미있는 동영상을 보며 참으로 의미 있고 집중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나 한다.
처음에는 잘 읽지도 못했던 전래동요를 지금은 서로 지지 않을 만큼 크게 부르고, 아침 인사와 저녁 인사를 혼동하던 아이들이 또박또박 인사를 전하고, ‘장영실이 누구냐’던 우리 반 아이들은 해시계, 물시계까지 알게 되었다. 즐거운 한국문화교실 속에 우리 반은 작은 한국이 되었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한국문화에 자연스럽게 동화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작년 한 해를 ‘꿈나무반’ 아이들과 함께하며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아이들 하나하나 모두 텀1 때의 모습과 텀4가 끝난 후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자신 없어 하던 발표도 이젠 목소리 높여 서로 먼저 하려 하고, 발음이 어려워 제대로 읽지 못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또박또박 글을 읽고 써내려 가는 것을 보면, 1년 동안 매주 교재를 만들며 씨름하던 내 모든 노고가 씻은 듯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무엇인가 시키면 몸을 꼬며 부끄러워하고 자신감 없어 하던 여학생들도 이제는 남학생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고, 글자노래도 목이 터져라 부르는 이런 아이들의 열기에 덩달아 신이 나 수업하게 되는 한 해였던 것 같다.
교장 선생님은 어른도 쉬고 싶은 토요일에 아이들이 다시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아침 회의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자면 더 감사하고 예쁘고 이 아이들에게 더 나은 한국을 알려주고 싶다는 의지가 솟구친다.
하지만 그렇게 앉아 있는 학생들의 뒤에는 당연 학부모들의 노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깨워 손을 잡고 학교로 오는 학부모들의 마음과 열정이 있기에 우리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기에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심슬기 / 호주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