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
2010년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가니 어머니는 응급실 침대에 누워 계셨다. 정확히 영문을 모르시는 듯 두리번거리며 “내가 어디 아프냐?”고 물으시는 어머니 옆에는 뇌수술 동의서에 서명하는, 초조한 눈빛이 역력한 여동생과 고등학생 큰 조카 녀석이 울먹거리고 서 있었다. 의료진들이 어머니를 이동하기 시작할 때 왠지 마지막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어머니 손을 잡고 “어머니, 내가 누구에요?” 물어보았다. 어린아이같이 맑은 표정의 어머니께서는 “사랑하는 내 큰아들”이라 말씀하시고 수술실로 실려 가셨다.
2018년 7월5일. 8년간 간병을 받고 식물같은 삶을 사셨던 어머니의 장례식 날이다. 1978년 호주에 오신 후 마지막 8년을 여동생 집에서 더없이 편히 지내시다 결국 집에서 눈을 감으셨기에 후회 없이 보내드릴 수 있게 됐다.
같은 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또 다른 한 사람의 장례식이 열렸다. 전 NSW 주 대법원장 Sir Laurence Street의 State Funeral이 거행되었다. 일종의 국민장으로서 NSW 주 정부가 공식 주관하는 장례식이다. Sir Laurence Street는 자타가 공인하는 금수저로서 호주에서 드문 명문 가문 출신이었다. 아버지 Sir Kenneth Whistler Street와 할아버지 Sir Philip Whistler Street 모두 NSW 대법원장을 역임하였다. 즉 200년 갓 넘는 역사의 호주에서 3대가 대법원장을 지내는 ‘가문의 영광’을 세운 것이다. Sir Laurence Street는 39세에 NSW 주 대법원 판사로 임명된 후 47세에 NSW 주 대법원장이라는, 법조인으로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잠시 여담을 하자면 그는 17세에 나이를 속여 2차 세계대전에 해군으로 참전했던 용기와 007 James Bond 같은 매너, 외모를 가져 여성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62세에 대법원장직에서 은퇴한 후 그는 새로운 법률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Commercial Mediator(상업 조정관)로 활동하였고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대안 분규 해결책) 전문가로 왕성한 업무를 수행하였다.
일반적으로 민사성 분쟁은 법원(Court)이나 Tribunal(특별한 문제를 다루는 재판소)에서 쌍방의 입장을 밝히고 증거 교환 후 판사의 판결을 받아서 해결되어진다. 호주에서는 ‘삼세판’ 식의 항소권리가 자동 주어지지 않고 패소한 편에서 승소한 편의 법률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일반적 원칙이다. 물론 가사 소송에서는 승패의 개념이 다르기에 각자의 법률비용을 각각 부담하는 것도 일반적 원칙이다.
소송을 시작해서 최종 재판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변호사들의 잘못도 아니고 호주 법원 시스템 자체가 대립적인 사법제도라 상당히 간단한 문제라도 판사가 일방적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쌍방의 변론을 충분이 듣고 나서 조심스레 결정하는 것이다. 우물에서 숭늉 찾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답답한 일이 없겠으나 정의란 양극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호주 판사들은 충분한 토론을 가진 후에 얻고자 한다. 이러한 불합리를 타파하는 것이 중재의 역할이다. 법정에서 멀리 높은 곳에 검정 가운을 입고 앉아있는 판사와 달리 인품, 인격, 경험, 경륜을 갖춘 중재자와 같은, 책상에 앉아서 그분의 조언을 들으면 완강한 사람들도 마음을 여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모든 소송에서 반드시 중재 기회를 가져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7월5일 장례식의 두 분 모두 평안히 가시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면책공고Discla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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