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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대 칼럼 - 비판적 성경읽기 (IV)
The Sydney Korea Herald
입력 : 2009-01-15 23:48   메일 : herald@koreanherald.com.au

호주인 교회에서 성경에 대한 교인들의 인식이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한 인간의 기록’으로 바뀌어감은 주일예배에서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성경을 읽은 후 “This is the Word of the Lord”(이는 주님의 말씀입니다)로 마치는데 이제 점점 많은 교회에서는 “In this is the Word of the Lord”(이 안에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로 끝마친다.

즉 방금 읽은 성경말씀은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한 인간의 기록이라는 엄숙한 고백이며,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달라는 설교자에 대한 정중한 요청이기도 하다.

유대교의 한 분파로 시작한 기독교는 초기 수십년 동안 주로 유대인 사회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신약의 여러 곳에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점차로 긴장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신약을 보면 마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매우 유대적이다. 마태복음에서 모세의 율법은 그 권위와 중요성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5:17-20). 반면 요한복음은 율법을 대신한 사랑의 새 계명을 강조한다(13:34). 아울러 요한복음은 유대인들에 대한 엄청난 반감을 드러낸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율법을 거룩하며 의롭고 선한 것으로 보지만(7:12), 이제는 성령의 법으로 대치되었다고 말한다(8:2). 누가복음-사도행전은 유대교의 한 분파였던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가는 역사를 알려준다.
기독교 신앙에서 구원은 중심적인 주제이지만 어떻게 우리들이 구원받는지에 대한 신약의 설명 또한 다양하다.

전통적으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의 피로 구원받았다고 말한다. 즉 예수의 죽음을 통한 구원이다. 하지만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는 구원이 예수의 부활과 분명히 연관되어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구원의 절대조건으로 예수의 죽음을 강조한다(10:45, 14:24). 반면 누가복음의 중심은 예수의 부활과 승천이다. 누가의 관심은 예수의 죽음이 아니라 부활로 인한 희망과 기쁨이며 바로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바울은 십자가 신학과 부활 신학을 하나로 융화시키지만, 그는 예수의 육신의 삶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히브리서는 예수의 죽음의 관점에서 철저하게 구원을 유대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야고보서 역시 유대주의적이지만 바른 신앙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1:27)임을 강조한다.

다양성을 드러내는 성경의 또 다른 주제는 “우리들에게 구원을 주는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이다.

예수의 인성(人性)은 히브리서 5:7-10, 마가복음 14:34, 36에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예수의 몸부림이 인간적인 관점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반면 예수의 신성(神性)은 요한복음 1:1, 10:30, 14:10, 20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의 신적인 근원 및 하나님과의 완전한 연합이 반복해서 강조된다. 서로 모순되는 두 관점은 우리들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4세기와 5세기에 걸쳐 교회에서 있었던 예수의 본질에 관한 지루한 논쟁이 있기 훨씬 전에 그들의 성경을 썼다는 사실이다. 성경의 각 저자들은 특별한 이유를 가지고 예수의 본질의 한 면만을 강조했다. 교회의 긴 논쟁과 역사의 결과를 가지고 거꾸로 성경의 저자들의 예수의 본질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덧칠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크게 봐서 비판적 성경읽기는 이러한 성경의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이다. 분명한 것은 수많은 저자들에 의해 쓰여진 성경은 그들의 서로 다른 문체와 형식과 아울러 다양한 신학적 의견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 성경의 저자들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살면서,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독자들과 아울러 자신만의 고유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신앙적 환경 아래에서 성경을 썼기 때문에 오늘날 한 권으로 통합된 성경을 가진 우리들이 다양성의 문제를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성경의 다양성에 대한 신앙인들의 반응 역시 다양하다.
1) 이러한 다양성을 무시하고 자기의 신앙에 맞는 부분만 취사선택하려는 자세.
2) 서로 다른 성경의 이야기들을 조합하고 연결해서 억지로 조화시키려는 자세.
3) 여러 방법을 사용해서 성경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정통과 이단으로 구분하려는 자세.
이러한 신앙인들의 반응은 성경이 가진 다양성을 바른 신앙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성경의 다양성은 우리들의 좁은 신학적, 신앙적 이해를 넘어서 좀 더 포괄적인 하나님과 신앙으로 인도하는 열린 문이 될 수 있다. 우리들이 아무리 많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늘 우리들에게 신비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비판적 성경읽기를 통해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하나님은 우리들이 현재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끝)

이영대
이스트 킬라라 호주연합교회 목사  y31d@yahoo.com

칼럼을 끝내면서…

지난 2004년 5월부터 이번 달까지 4년8개월동안 월 1회 칼럼을 한국신문에 연재하면서 기독교 신앙과 교회, 그리고 사회 전반에 관해 많은 부분을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한국신문과 독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신앙의 길은 언제 어디서나 기쁨과 슬픔, 찬성과 반대를 나누며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가 있으므로 가능함을 다시금 기억하면서, 그 동안 부족한 제 글들을 읽고 다양한 의견을 주신 여러분들의 신앙의 길에 큰 깨달음과 아울러 은혜가 넘치기를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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