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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자씨의 집 이야기-1

[조나신]

엄마의 부엌

 

2년 만에 다시 이사를 가야만 하게 되자 춘자씨는 오랜 시간 정착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혼자 살면서 굳이 집을 소유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지만, 자주 이사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몇 해 전 돌아가신 베티 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춘자씨가 방문할 때마다 막 구운 보슬보슬한 옥수수 스콘과 커피를 연하게 내려서 바퀴가 달린 카트 위에 내왔다. 그 옆에는 조그만 잼용 칼과 꿀, 그리고 버터가 앙증맞은 종지에 담겨 있었다. 제철 과일 역시 한 켠에 얌전히 자리했다. 오롯이 춘자씨만을 위한 것이어서 그녀는 융숭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었다.

바이블 스터디로 베티 할머니 댁에서 모임을 갖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하나 둘씩 빠지면서 결국 춘자씨만 남게 되었다. 바이블 스터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하면서 관계가 돈독해졌다. 그 집에서만 오십 년 넘게 살았다는 작고 통통한 베티에게서는 늘 푸근한 엄마 냄새가 났다.

베티 할머니의 주방은 ‘엄마의 부엌’을 떠올리게 한다.

 

춘자씨가 어린 시절 살던 곳은 요즘 집들과는 다르게 부엌이 맨 끝에 위치해서 비밀스럽고도 아늑했다. 문을 닫으면 달랑 그 부엌만 세상과 떨어진 느낌이었다. ‘ㄱ’자로 배치된 싱크대 앞에는 10인용 직사각형 식탁이 있었다. 식탁 위에는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늘 분신처럼 따라다니는 엄마의 낡은 라디오가 자리했다. 그곳에서 엄마는 책을 읽고 투박한 검정색 대학노트 한 켠에 영수증을 붙여 정리하고 그 옆에 짧막한 일기를 적었다. 부부간 말다툼을 한 후나 기분이 상한 직후에도 그녀는 부엌에만 들어가면 노래를 흥얼거렸다. 엄마에게 부엌은 노동의 공간이 아닌 놀이공간 같았다.

식탁에 가족들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춘자씨와 동생들은 엄마가 떼어 준 밀가루 반죽으로 집이나 비행기, 차 등을 만들었다. 하얀 밀가루는 어느 새 꼬질꼬질한 회색이 되었다.

손을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늘 그녀의 말에 공감해주고 눈을 마주치는 엄마가 있어서 행복했다. 춘자씨에게 엄마는 가장 친한 친구였다.

춘자씨의 친구들은, 그녀를 만나면 엄마의 안부부터 묻는다. 엄마가 만들어 주었다는 윤기 자르르 흐르던 달달하고 매콤한 양념치킨의 맛을 기억하는 친구도 있다. 어떤 이는 이스트를 넣어 만든 보슬보슬했던 엄마표 카스테라와 구멍이 숭숭 뚫리고 술 냄새가 시큼하게 나던 빵도 생각난다고 한다. 버터를 녹여 밀가루를 볶다가 우유와 물을 붓고 새우와 버섯을 다져 넣거나 작게 자른 튀긴 식빵을 후라이팬에서 타지 않도록 나무주걱으로 계속 저어주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면서 크림수프가 만들어졌다. 친구들에게 엄마의 요리는 인기 만점이었다.

베티의 주방에서 춘자씨는 형태도 맛도 달랐지만 정성과 사랑으로 구워 낸 엄마표 사랑의 빵을 맛보았다. 그래서였을까… 요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베티 할머니의 주방과 비슷한 집을 보러 다닌다. 탁 트인, 열린 공간을 강조하는 집들이 즐비할 뿐이어서인지 주방과 식당에 따로 문이 달려 있는 옛날 집은 보기 드물다. 가끔 오래된 주택을 찾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곳에서 느껴지는 주방의 분위기는 춘자씨가 원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주방 하나만 보고 집을 고르는 데도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나지 않는다.

직장 일에 바빠 평일보다는 주말에 발품을 팔면서 끊임없이 그녀가 상상하는 집을 물색 중이다. 언젠가는 나타날 아늑한 주방이 있는 미래의 집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춘자씨는 그 주방에 서서 고기를 굽고 샐러드를 버무리는 자신을 그려본다.

 

 

조나신 / 공인중개사(Licence No. 20134299), 정문호 부동산 근무. jennycho@jjrealty.com.au / 0403 316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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