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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한인작가회 ‘산문 광장’

[김인호]

가치관의 혼돈

 

해마다 3월초에는 동성애자들의 마디그라 축제가 퍼레이드로 절정을 이루며 시드니 거리 일각을 뜨겁게 달군다. 무지개 색을 상징으로 삼는 이들의 축제는 나름대로 올림픽 때만큼이나 떠들썩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동성애자 축제인 만큼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무지개 색으로 페인트를 칠한 공중전화 부스도 눈에 띄고 어느 은행은 시내 곳곳에 현금자동입출금기를 화려한 색으로 단장하기도 한다. 2월 중순부터 3주 동안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는데 현란하게 춤추는 남자들, 반짝이는 악기들과 형형색색의 모자를 쓴 모습들이 시드니 시내를 화려하게 수놓는다. 호기심 내지 지지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일반시민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다. 이래도 되는 걸까.

 

재작년, 캔버라에 사는 딸아이가 마디그라 축제에 동참하려고 휘황찬란한 모자까지 가지고 시드니에 왔다. 청록색 칠면조의 깃털과 코카투의 하얀 깃털이 중간중간 장식되어 있고 오색영롱한 유리구슬을 촘촘히 박아 화려함을 한껏 뽐낸 모자였다. 무게가 3킬로그램은 족히 되어 보였다.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를 보며 딸은 오히려 의아해 했다. 네가 어떻게 창조의 원리를 깨는 마디그라 축제에 가느냐고 질문했다가 나는 그만 딸에게 역습을 당하고 말았다. 동성애자들은 성의 정체성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타고 났는데 어쩌겠느냐고 되물어 왔다. 엄마는 생각이 편협하다고 쏘아 붙이는 딸아이는 파티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도도하게 내 앞을 스쳐 시내로 향하였다. 순간 성경의 한 구절이 섬뜩하게 떠올랐다.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라고 말하고 있는데 딸아이는 그걸 모르는 것일까?

 

십 오육 년 전 나는 뷰티션으로 일한 적이 있다. 일은 재미있었고 나의 수고로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자부심까지 생겼다. 고된 일이지만 나날이 즐거웠다. 하루는 곱상한 남자손님이 다리의 털을 제거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준비를 하는 사이 그는 바지를 벗고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를 본 순간 나는 속으로 아연실색했다. 동백꽃처럼 붉은 팬티에 발톱엔 붉은 패디큐어까지. 목소리조차 여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누워 있는 그가 게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못하겠다고 거절을 할까 싶었지만 나를 찾아온 손님이 아닌가. 그는 미소를 띤 채 다리 전체의 털을 제거해달라고 했다. 나는 차분히 숨을 고른 후에 작업에 들어갔다. 허벅지에 왁스를 바른 후 헝겊을 대고 왼손으로 피부를 가볍게 누르며 헝겊을 확 잡아당기니 서로 엉켜있던 털들이 순식간에 뜯겨져 나갔다. 그의 하얀 속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얼른 진정제 크림을 발라 주니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무척 아팠을 텐데도 잘 참아내며 말을 걸어오기까지 했다. 그날 밤 파티에 가는데, 많은 사람들과 춤을 출거라고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파티를 손꼽아 기다리는 소녀 같은 그 남자손님의 모습에 나는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현대를 사는 지금,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날로 변해가는 것을 본다. 매스미디어는 정의를 오도하고 흥미위주의 상업발전에만 포커스를 맞춘다. 도덕은 쇠퇴하고 법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사회구조를 뒤집고 있다. 기준이 무너진 사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어쩌면 딸아이의 생각과 내 생각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것도 가치관의 혼돈이 아닐까. 태어날 때부터 그런 성향을 갖고 태어났으니 누가 무어라 말할 것인가. 어찌 내가 그들을 정죄할 수 있을까. 그러나 딸의 생각을 공감할 수도 없고 내 생각이 옳다고 말할 수 없는 가치관의 혼란에 빠져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김인호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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