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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문학협회 ‘산문 광장’

[차루나]

한호 수교 50주년 기념행사 아리랑관람

 

북적거리는 인파 때문일까. 어느 출구로 나서야 할지 갑자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림잡아 나가 보니 타운홀 계단 위로 바로 올라선다. 이른 시간이라 계획했던 대로 오랜만에 쇼핑센터에 들리려 내려오니 계단 아래, 길 안쪽으로 늘어선 줄이 눈에 들어온다. 공연 관람을 위해 선 줄이라는 것이 뇌리를 스치니 무안한 느낌이 들어 얼른 내려와 줄의 끝을 찾았다. 부슬부슬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해금연주 아리랑’을 시작으로 중요무형문화재 ‘태평무’가 이어진다. 왕실의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여 왕비 또는 왕이 직접 춤을 추기도 하였다고 한다. 흔히 볼 수 없는 의상과 무겁게 느껴지는 머리 모양으로 장중한 국악에 맞추는 느릿한 춤이 오히려 안정감을 주었다. 앞의 순서와는 판이한 ‘가곡’이 시작되었다. 가사의 끝이 높고 낮은음으로 긴 엿가래처럼 한정 없이 늘어진다. 우리나라 재래음악이라 하였지만 내겐 지루하다 못해 숨이 막히듯이 답답한데 자리를 메운 관중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사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갑자기 눈앞이 확 트이는 분위기로 화려한 꽃밭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착착… 소리와 함께 부채를 접었다 펴기도 하고 사뿐히 걷다 폴짝 폴짝 뛸 때면 둥글게 퍼지는 붉은 치마 속에 흰 눈 같은 속바지가 눈을 부시게 했다. 환호와 박수갈채가 모형이 바뀔 때마다 끊이질 않았다.

 

몇 년 전,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 부채춤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해마다 열리는 학예회에서 학생들은 자기 나라의 고유문화를 펼치기도 하였다. 어렸을 적에 고전무용을 배운 적은 있었지만, 부채춤은 해 보지 않아서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처음으로 받은 제의라 일단 받아들였다. 방과 후에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우리 집으로 학생들을 데려와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다양한 부채춤을 보았다. 다행히 고전무용을 한 두어 명의 상급생이 있어 도움이 되었지만 제한된 7분이 그토록 길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절반이 조금 넘게 소요되는 ‘태평가’로 결정을 하고 안무를 만들어갔다.

초등학교 상급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무용소를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집 넓은 마루를 빙빙 돌며 춤추기를 좋아하였지만 철없던 시절, 내 잘못으로 길게 배울 수가 없었다. 새로 들어온 수강생과 한바탕 싸움을 한 후 그 아이가 무서워 무용소에 나가는 대신 친구 집에서 며칠 놀았다. 때마침 손에 쥐어진 수강료의 한 귀퉁이를 군것질로 소진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난감해 하고 있던 중, 별명이 호랑이였던 엄마에게 모진 매타작을 받은 후 마침표를 찍었다. 이번 기회에 그때 배우지 못해 아쉬웠던 부채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흥분되기도 했다.

영사관 산하에 문화연구원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보내온 넉넉한 부채와 우리가 소장한 것보다 화려하고 예쁜 한복을 지인에게 얻기도 하고 다른 기관에서 몇 벌 빌려왔다. 저학년 학생들에겐 한손에 잡기에도 버거운 부채였지만 아이들은 빠른 속도로 숙련되어 갔다. 전교생이 자리 한 강단, 천장 한가운데 설치된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태평가가 웅장하게 울려 나왔다. 우리 민요가 이렇게 근사한지 처음 느낄 수 있었다. 긴장되어 땀으로 흥건히 고이던 내 주먹이 펴지며 어깨춤이 덩실덩실 추어졌다. 다른 모형으로 바뀔 때마다 와∼우하는 감탄사와 박수가 홀을 가득 채웠다. 한국인임을 자랑하며 점심시간과 방과 후 서로를 도와주며 연습에 임하던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과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을 생각하니 퍽 흐뭇했던 기억이 새롭다.

유네스코 문화제 5호로 지정된 판소리 ‘심청전’으로 순서가 넘어간다. 나의 어린 시절 즐겨 놀던 연극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심 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이다. 수업 마치기가 바쁘게 한 주에도 두세 번씩 학교 가까이 사는 친구네로 몰려갔다. 방 가운데 미닫이문을 반쯤 열면 무대 뒤와 무대가 그럴싸하게 만들어지던 방이 있었다.

심청이가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三百 석에 팔려 인당수 바닷물에 퐁당 뛰어드는 장면에 다다르면 한복 치마를 뒤집어쓰기도 전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만약 나의 아버지가 심 봉사처럼 된다면 나도 심청이처럼 이렇게 해야 하는 걸까. 물속에 아무리 아름다운 용궁이 있다 해도 물에 빠지는 것은 겁이 났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심 봉사처럼 앞을 못 본다는 것을 상상만 해도 너무 슬프고 싫어 토끼 눈이 되도록 울기도 했다.

‘강강술래’가 이어진다. 머리를 길게 땋은 처녀들의 의상이 달빛에 은은하다. 고교 시절 자주 있던 매스게임 시간이 말할 수 없을 만큼 싫었지만, 강강술래만큼은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돈다 하며 빙글빙글 돌 때는 무대 중앙의 보름달과 함께 나뿐 아니라 홀을 채운 관객 모두가 같이 도는 것 같아 신이 났다. 공연의 마지막 순서는 신명 나는 남사당놀이가 장식했다. 풍물패에 이어, 한 손에 든 대나무 꼬챙이 끝에 얹은 접시를 돌리는 버나, 몸을 날려 넘는 땅재주 살판, 탈을 쓰고 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추는 덧뵈기와 꼭두각시놀음의 덜미가 이어졌다. 까만 머리만 보아도 혹시 한국인이 아닐까 하는 반가움에 가슴이 설레던 적이 엊그제 같은데 시드니 타운홀을 가득 메운 교민과 호주인이 함께 어울려 아슬아슬한 놀이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사물놀이에선 휘모리장단, 이채, 삼채, 몇 년 전에 배웠던 장구 실력으로 무릎이 얼얼하도록 손장단을 맞추며 흥을 돋워 본다.

 

한호수교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 ‘아리랑’, 주관한 문화원을 비롯하여 무대를 빛내준 모든 분께 감사와 찬사를 보내고 싶다.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참석한 이곳 현지인들에게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교민들에게는 추억을 더듬어보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뜨거웠던 열기를 시원스레 씻어주려는가, 촉촉한 단비와 함께 세모 앞에 바짝 다가선 행복한 밤이 깊어가고 있다.

차루나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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