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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칼럼호주문학협회 ‘산문 광장’- 내 안에 너 있다

호주문학협회 ‘산문 광장’- 내 안에 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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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더위에 겨울용 가운까지 걸쳐 입고 콜록 콜록 큰 아이의 기침이 심하다. 감기약을 찾아보니 어떻게 집안에 상비약 하나가 없다. 준비성 없는 내가 무지한건가, 무심한건가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지만 건강하게 살았다는 증거로 돌려버렸다. 아들은 나의 넙적한 니트 헤어밴드를 달라고 하더니 폴라 티를 입은 양 목을 감싸고 나를 좀 보란 듯 거실을 빙빙 돌며 숨이 넘어갈 듯 기침을 해댄다. 남편은 아이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부드러운 말씨로 걱정을 하는 듯하더니 돌아서서 제방으로 향하는 녀석의 뒤통수에 대고 “에휴, 나보고 담배 끊으라고 하던 놈이…” 하며 무언가 억울해하는 눈치다.

남편은 10년 전, 근 20여 년간을 피워오던 담배를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정하게 끊게 되었다. 스무 살 시절 아버지의 담배 한 개비로 시작해서 오랜 세월 몸에 껌처럼 붙어있던 기호품을 떼어버린 것은 어느 날 갑작스런 두 아이의 채근 때문이었다. 당시 아이들은 TV의 금연홍보에서, 흡연으로 인하여 폐가 심하게 손상되어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다 사망하는 장면이나 손톱, 발톱마저 흉측하게 망가지는 것을 보고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두 아이가 합세하여 아빠 구출작전에 나선 것이다. 그들은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보며 금연 코치가 되기 시작했다. 어쩌다 아이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 걸릴라치면 학창시절 지도교사에게 걸린 듯 황급히 불을 비벼 끄고 연기를 분산시키려 허공에 헛손질을 하며 입김을 후후 불어대는 ‘그때를 아십니까?’를 재연하곤 했다. 아이들은 아빠의 손가락과 입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증거를 입수했다. 그리고 일찍 죽고 싶으냐고 야단을 치고는 자신들도 하이스쿨을 졸업하면 즉각 담배를 피우겠노라 엄포를 놓았다. 때때로 불시에 소지품을 수색하기까지 하여 담뱃갑이 나오면 죄다 부러뜨리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남편은 한밤중에 몰래 나가 버려진 그것을 주워 테이프로 동여매고는 달빛 아래, 별빛 아래 봉합 부위까지만 연기를 날리며 생이별을 준비했다. 매달리는 연인을 외면하는 아픔이었으리라. 그렇게 본을 보이는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 그는 금연을 했다. 금연의 후유증조차도 어린 상전 앞에선 무릎을 꿇었다. 남편은 그 전에도 스스로 두어 차례 금연을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안절부절 못하고 애만 쓰다 실패로 돌아가곤 했다. 금단증상으로 힘들어 하는 것을 지켜본 나로서는, 본인의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옆에서 보는 가족들이 받는 스트레스보다는 차라리 흡연, 혹은 간접흡연이 정신 건강상 낫다고 생각했으므로 굳이 끊을 것을 닦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했다.

그렇게 아빠를 금연시킨 아이가 자라 스무 살이 되더니 버젓이 담배를 피운다. 몸에 백해무익함을 이미 알면서도 입에서 연기를 내뿜는 장난으로 시작한 것이 목구멍, 후두, 폐를 휘젓고 코로 달아나는 중독으로 치닫는 흡연의 마성에 빠져있는 것이다. 담배도 담배이거니와 평상시 콧물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는 환경이 청결해야 한다. 그러나 좀처럼 제방을 치우지 않는다. 더구나 바닥이 오래된 카펫이어서 먼지가 많이 생긴다. 방좀 치우라고 잔소리를 하고 애원을 해도 언제나 발 디딜 틈이 없다.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라 때로는 문자로 “방 좀 치워라” 하소연도 해 보았다. “네 알겠습니다 ㅋㅋ” 답장도 온다. 몇 차례의 잔소리와 문자가 오고 갔건만 방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보다 못한 남편이 아무래도 청결치 못한 환경이 감기의 원인이 된 것 같다며 아이의 방 청소에 나섰다. 남편은 정리 정돈의 귀재다. 무엇이든 잘 감춘다. 반면 너무 깊숙이 갈무리 하는 바람에 정작 무엇이 필요할 때에는 몽땅 뒤집어엎어야 할 때도 있다. 빨래를 갤 때도 군대에서 몸에 밴 스타일로 각이 딱딱 맞아 떨어진다. 수건이든 속옷이든 꺼내어 펼치기가 머뭇거릴 정도이다.

달인의 손을 걷어붙이고 방을 청소하던 남편이 요란스레 나를 부르며 뛰쳐나온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가오는 그의 음색에는 일종의 황당함인지 반가움인지 구분할 수 없는 묘한 뉘앙스가 있었다. 무슨 못볼 꼴이라도 보았나 내심 불안했다. “글쎄 쟤 방에 이런 게 있어” 하며 담뱃갑을 내어 보인다. 나는 안심과 더불어 짜증이 치밀어 “애가 담배 피우는 거 이제 알았느냐”며 면박을 주었다. 그러나 희한한 담배라며 다시 한 번 보라고 한다. 들여다보니 ‘2가지 맛 한 번에 썬프레쏘’ 커피 향이 나는 한국산 담배다. 유난히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맡아보니 향기롭다. 향기를 감싸 안은 표지에는 몸에 해악한 온갖 성분들이 나열된 경고의 문구와 함께 금연상담 전화번호도 있다. 손에 든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편… 젊은 날의 자신을 투영하며 아들의 담배에 정신을 빼앗기는 듯하다. 이 맛은 어떨까, 십 년 만에 피워도 첫 담배의 한 모금처럼 핑 돌까? 냄새는 어떨까 정말 커피향이 날까? 스무 살 시절로 달음박질쳐간 그의 호기심이 스멀스멀 연기가 되어 새어 나온다. 한 개비 빼서 반씩 피워볼까 제안 하고 싶었지만 이제 눈 한번 마주치기도 힘든 아이들이 과연 손가락과 입 냄새를 맡아주는 강아지가 되어줄까?

아버지가 첫 담배를 피우던 스무 살 나이에 아들이 흡연을 시작했다. 중년의 아버지는 젊은 아들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성화를 바친다. 남편은 담뱃갑을 손에 쥐고 다른 한손으로 엄지와 검지를 구부리고 잠시 눈을 감고 중지와 약지를 접는다. 으휴~ 한숨 속에 약지와 중지를 편다. 알쏭달쏭한 그의 속내가 들리는 듯하다.

앞으로 이십년 더… 내 안에 너 있다.

 

이항아 / 수필가, 호주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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