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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칼럼호주문학협회 ‘산문 광장’- 애마는 가고

호주문학협회 ‘산문 광장’- 애마는 가고

[종합(이주열)]

오늘 나의 애마가 하늘나라로 갔다. 6년 넘게 생사고락을 함께 한 소중한 존재였고

생업에 크게 기여한, 잊을 수 없는 대상이었다.

4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제한속도 시속 100km인 구간이었다. 나는 3차선 중 가운데인 2차선으로 주행 중이었는데 옆으로 아주 길고 커다란 화물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심한 바람이 일면서 차가 흔들렸다. 평소에 경험했던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핸들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도 좀 더 크게 흔들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묵직한 느낌이 오며 차가 더 크게 요동을 쳤다. 순간적으로 큰일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뒤에 트레일러가 달려 있었고 트레일러에는 벽돌들이 많이 실려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급제동을 하면 뒤집히면서 굴러버릴 것 같은 상태였다. 재빨리 비상등을 켜고 백미러를 통해 뒤쪽 상황을 살펴보았다.

많은 차들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큰 사고가 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질주하는 차를 멈춰야 하고 뒤집히는 일을 막아야 했다. 차는 이미 핸들을 빼앗기고 1차선으로 접어들어 있었다. 우측으로 길게 뻗은 콘크리트 중앙 분리대가 빠르게 지나간다. 힐끗 쳐다본 속도계가 시속 90km 였다. 차는 좌우로 흔들리고 브레이크로 차를 세울 수 없다면 차가 뒤집혀 구르는 것보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라도 사태를 마무리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갔고 사랑스럽게 웃는 아내의 모습도 떠올랐다.

물수제비 뜨듯 부딪치면서 속도를 줄일 심산으로 핸들을 살짝 꺾었지만 충돌이 너

무 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자욱이 일며 차가 튕겨났고 다시 한 번 ‘쾅’ 하면서 멈춰 섰다. 귀가 멍 하고 눈앞이 캄캄했다. 재빨리 사지를 움직여 보았다. 목도 돌려보고 거울에 얼굴도 비쳐보았다. 모두 다 멀쩡하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문이 찌그러들어 열리지 않았다. 전화로 경찰을 부르려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찌그러진 문을 열어주면서 웃는다. 괜찮으냐고 묻는 현지인이 마치 구세주 같았다. 그와 내가 힘들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펴보니 참으로 처절하게 부서져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뒤로 승용차가 한 대 서있고 지붕위에는 경광등이 번쩍이고 있었다. 차 문을 힘겹게 열어준 사람이 바로 사복 경찰이었다. 다른 차들이 서행하면서 옆 차선으로 비켜 지나간다. 본능적인 호기심과 그들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는 안도감 같은 게 읽혀졌다.

자기가 3차선 모두를 막아줄 테니 차를 움직여 안전지대인 풀밭으로 운전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감지덕지하여 차에 올라 시동을 걸어보니 의외로 잘 걸렸다.

1단 기어를 넣고 가속페달을 밟자 차가 앞으로 나간다. 순간적이지만 뛸 듯이 기뻤

다. 끝까지 나를 따라주는 차가 얼마나 고맙고 신통한가. 다리가 부러진 채 절룩거

리면서 주인을 등에 태우고 전쟁터에 서 있던 상처 입은 말이 떠올랐다. 도로를 대

각선으로 운전하여 풀밭으로 끌고 나왔다. 고속도로 위에는 파손된 트레일러가 끌려 나오며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트레일러에 실려 있던 벽돌들이 중앙분리대와 부딪히면서 고속도로위에 흩어져 날렸다면 말할 수 없이 큰 사고가 났을 게 뻔하다. 주유소에서 트레일러를 빌릴 때 망이 있는 것으로 빌린 덕분이었다.

 

사람들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선택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결과도 초래하게 된다. 망이 있는 트레일러를 빌린 선택은 참으로 잘 한 것이었고 벽돌을 배달시키지 않고 공사기간을 단축시키려고 직접 운반하려했던 결정은 아주 위험하고 무모한 선택이었다.

“당신 오늘 운이 아주 나빴소. 하지만 당신은 오늘 매우 운이 좋은 날이기도 하오”라면서 운전면허증을 돌려주고 간다. 정말로 너무나 멋지고 훌륭한 경찰이었다. 저런 경찰들만 있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까. 악수를 하면서 잡은 그의 손은 부드러우면서도 완강했다. 정말 좋은 사람 냄새가 났다. 이 각박한 세상에 잠시나마 누군가에게 좋은 인상으로 기억 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견인차를 두 대씩이나 동원하여 사태를 수습했다. 폐차처리를 할 정도로 큰 사고가 났지만 당사자인 나를 포함하여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고 다른 어떤 차량도 상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폐차된 차로 인해 금전적 손실이 생기고 차를 새로 마련하는 동안 생업에 지장을 초래했지만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주체인 내 몸이 무사히 살아난 행운에 비하겠는가. 교통사고 후에 후유장애가 따른다는 말이 생각났지만 바쁜 일정에 묻혀 버렸다.

 

오늘도 나는 새로 산 말에 올라 박차를 가하며 일터를 향해 달려간다. 주인을 잘못

만나 비운에 간 그 애마를 생각해서라도 기력이 지탱하는 날까지 지치지 않고 시드니를 누비며 기량을 펼치리라. 마치 습관인 듯 일을 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내 삶의 종착역은 어디이고 언제쯤 도착할까. 누가 무슨 꽃을 들고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주열 / 수필가. 호주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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