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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칼럼호주문학협회 ‘산문 광장’- 비상구

호주문학협회 ‘산문 광장’- 비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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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비상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어린 계집아이가 욕심도 많아 무엇이든지 소유하는 것에 집착했다. 먹는 것에 욕심을 부려 밥그릇은 항상 수북해야 울지 않았다. 그래서 밥 그릇 중간에 다른 작은 그릇을 엎어 많게 보이도록 주신 부모님. 그때부터 항상 지켜주신 부모님은 비상구가 필요 하지 않을 나의 안전한 방공호였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을 쳐다보면 마른 논 밭에 물줄기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듯이 아무리 보아도 밉지가 않다며 안전한 보금자리로 비상구를 달아 주신 부모님이셨다. 7남매 모두 서울까지 유학 보내며 고추장, 된장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오르내리며 보살펴주신 정성에 우리는 항상 비상구가 필요하지 않는 안전한 방공호에서 잘 지낼 수 있었다. 든든한 울타리에서 마음껏 꿈을 펼쳐보도록 날개를 달아주신 고마움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곳에서 자립하여 새로운 비상구가 달린 방공호를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을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보호막에서 그리움의 여운을 남겼다. 다른 둥지로 날아와 보금자리를 품어 열심히 살아 보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역시 부모님의 비상구를 몇 번이고 들락거리고 싶었다. 나이든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이 불안하셨는지 “언제든지 힘들면 오너라. 어머니, 아버지 집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라고 말씀하셨다. 좀 더 안전한 다른 둥지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딸의 새 둥지를 걱정하셨다. 누가 이 세상에서 부모님보다 더 든든한 둥지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부모님의 마음이 절실히 그리워진다. 이제야 조금 철이 들어가는 나이가 되고 보니 가슴 밑에서 무엇인가 촉촉이 젖어있음을 느낀다.

 

안전한 방공호를 나의 분신에게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사랑의 눈빛을 보여주기 전에 독촉의 눈빛으로 닦달을 했다. 무엇이든지 또래보다 잘하기를 재촉했고, 숨 쉴 틈이 없이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수영, 골프, 악기, 공부, 공부를 귀에다 외치며 남에게 뒤지지 않아야 살아남는 것처럼 아이들의 목을 조여 왔다. 공부만을 강조하며 이곳 호주까지 데리고 와서 구석으로 몰아가며 여유도 없이 기계처럼 움직이길 바랐다. 부족한 실수는 용납을 못했다. 빠져나갈 비상구 하나 만들어주지 못하고… 옛 동화 ‘콩쥐와 팥쥐’에서 나오는 콩쥐의 새엄마처럼 아이들에게 했던 나의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완전한 계모였으면 더 아이들에게 좋았을 것 같다. 적어도 자립심은 확고히 만들어졌을 것 아니겠는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비상구가 없었던 숨 막히는 방공호 중간에 세워둔 셈이 되었다. 한국인과 호주인의 중간 비상구에 아이들이 서 있는 것 같아 부모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음을 실감한다. 이제라도 아이들이 안전하게, 무사히 자기들의 비상구로 잘 찾아 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싶다.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수많은 비상구가 필요하다. 슬픔, 괴로움, 어려움에 있을 때는 안전한 비상구인 탈출구를 찾아보려 갈망한다. 또한 그런대로 지낼 만하면 비상구가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려고 하지 않는다. 공항대합실, 주차장, 아파트복도, 학교 교실 공공건물… 어디에든 비상구는 있다. 그 비상구 표시에는 달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있다. 우리는 ‘비상구’하면 달려서 도망가는 것이라는 선입감을 갖고 있다. 우리들 마음의 비상구는 그저 잠시 쉬어가는 안전한 휴식처를 찾아 통과하는 문이라는 것으로 인식이 되면 한다. 비상구 안에 비상구를 달아 놓은 것 같은 마음을 서로 열어놓고 이웃하면 좋겠다.

우리들 가슴속에 안전한 비상구 하나쯤은 달아놓고 살아가면 어떨까? 안전하게 저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그곳으로 향하는 문을…

김 마리아 / 수필가. 호주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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