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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문학협회 ‘산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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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탁 트인 남태평양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백사장, 기암 바윗돌과 야생초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절경이 있는 마루브라 해변가. 모래사장 서쪽 편에는 옛날 화산이 분출한 숭숭 뚫린 현무암과 둥글둥글한 몽돌들이 파도와 어우러진다. 해변을 거닐며 내 마음에 드는 조각돌을 찾기도 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보기도 한다. 모양과 크기가 다른 자연의 돌들이 주는 경이로움과 신비감은 생명력마저 느끼게 한다. 세상의 많은 인간상의 모습도 이와 같은 아름다움과 멋을 풍겨낼 수 있을까.

어린 시절 개천에서 물놀이하다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둥글납작한 돌을 발견하면 수면위로 돌팔매 짓과 공기놀이를 했다. 배가 아플 때는 화롯불에 올려놓아 달구어진 둥근 돌을 수건으로 돌돌 말아 어른들이 한방의료 기구처럼 사용하기도 하였다. 넓적한 돌이면 어머니의 빨래 도구가 되어 주기도 하고 성년기에는 사랑의 조약돌이 되기도 하였다. 예쁘장한 무늬나 모양이 쓰임새가 있어 보이고 독특한 색채가 있으면 집으로 옮겨가 화단에 놓거나 책꽂이 앞에 놓고 조각품인 양 감상을 하기도 했다.

돌은 자연이 준 선물이다. 바윗돌의 역사가 20억 년 전부터였다는데 오랜 동안 화산과 풍화작용에 의하여 바윗돌이 돌멩이로 변모했으니 자연도 세월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큰 바윗돌에서 잔돌까지 쓰임새에 따라 가공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바뀌기도 하고 수난을 당하기도 한다. 마치 인간이 겪는 세파의 풍상같이. 한편, 관상용 수석으로 사랑을 받기도 하고 우리네 조상들이 소원과 복을 비는 성황당의 돌탑이나 유적지의 돌담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적을 대항하여 무기로 사용하기도 했다. 백성들이 길흉을 미리 알려주는 영험한 암석으로 마을에서는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아사달 아사녀의 설화가 불국사의 석가탑에 서려있기도 하다.

건설 붐이 한창 인 70년대 중동 사막 지방에서 항만공사를 하기 위해 자갈, 모래와 시멘트를 배합하여 집채만한 큰 블록을 만들어야 했는데 지질전문 직원이 굴착기로 그 넓은 사막의 야트막한 지역에서 둥근 자갈을 채취하여 많은 콘크리트 블록을 만들어 냈다. 불모지 사막에서 돌을 재료로 하여 거대한 바다에 항만이 건설되었으니 지질학자와 토목엔지니어들에 대하여 절로 존경심과 경이로운 마음이 들었었다. 뿐만 아니라 사막 밑에도 자갈과 물이 흐름을 알게 되었다. 마치 얼음 밑에도 물이 흐르듯이.

돌의 태생은 용암이다, 용암이 풍화작용으로 바위가 되고 돌덩이, 돌맹이 되어 자갈과 모래알로 변했다.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모난 것, 둥글둥글한 것, 뾰죽뾰죽한 것, 둥글납작한 것 등. 가지각색 모양의 돌들은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유사하다. 인간과 돌의 관계는 인류 역사 최초 단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어 오고 있다. 쓰임새에 따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돌들도 고통도 아랑곳없이 묵묵히 자연의 위치를 지키듯이 인간의 삶도 어려움을 잘 극복하며 묵묵히 생활을 유지하고 자리매김하고 있음은 이와 같으리라. 신라의 승전법사가 중국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올 때 80여 개의 돌을 거느리고 와서는 그 돌들을 향해 강연을 했다고 한다. 갖가지 형상의 돌에서 세속적인 인간의 모습을 헤아리며 ‘돌을 깨우쳐 주는 신력의 경지에 이를 때 이윽고 자아를 깨닫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우리가 돌에서 자연을 탐구하며 인생을 관조할 때 세상의 모든 근본원리를 나름대로 찾게 되지 않을까.

나는 마루브라 해변에서 연륜으로 깎기고 다듬어진 가지각색의 둥근 조약돌을 주우며 지나간 일들을 되돌아본다. ‘추억은 누구에게나 아름답다’ 했던가.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의 속삭임에 향긋한 바다 내음 풍기는 자연산 돌멩이 조각품을 나는 사랑한다. 마치 정겹고 거짓 없는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오늘따라 스치고 간 파도에 조약돌이 석양에 비쳐 더욱더 빛난다.

양상수 / 수필가. 호주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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