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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칼럼[산문광장] 돈-송영신/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산문광장] 돈-송영신/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돈-송영신/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

나는 사십여 년을 한국돈을 쓰고 살았고 사 년을 싱가폴달러 그후 호주달러를 쓰며 산지도 삼십 년이 넘어 가고 있다. 돈 쓰러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돈을 싫어할 리는 천부당만부당이다. 그런데도 늘 모자라 아쉽지 남아도는 돈은 없었다. 가족중의 누군가가 애써 벌었을 생각을 해본 적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저 필요한데 쓸 궁리가 먼저였다. 어린시절은 말 할 것도 없이 당연히 아버지가 돈 버는 사람이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돈은 남편이 월급 타다 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천하태평속에 돈의 쓰임새나 중요성을 심각하게 느껴 본 적이 없는 탓일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쟁 후에 부족한 것 투성이 속에 자랐으니 욕심을 낼 만도 한 일이 많았을 텐데 전혀 그랬던 기억이 없다. 있으면 아껴 쓰고 크게 사치를 하거나 욕심내지 않는 것 만이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의 생각 속에 빠져 있었던 걸까, 무엇이 꼭 갖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를 기르면서도 여전하기만 했다. 공부하라고 다그쳐 본적도 없었고 그저 점심 샌드위치 잘 싸주는 데에만 열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지분 자녀 결혼식에 참석하였고 모두들 학원 얘기를 하는 데 나만 모르는 것 같았다. 아쉬운 생각에 등 떠밀어 나도 아이 학원 좀 보내 보려 했지만 그건 엄마 생각이라며 거절하니 실패로 돌아가고 잘하면 좋고 못해도 그만이고 하다 보니 세월이 흘러 둘다 어른이 되었다. 누나와 터울이 있는 아들은 삼십 중반을 들어선다. 공부 끝내고 시작한 직장 생활이 회사 이름 외우기도 벅차게 자주 바뀐다. 그것도 능력이란다. 어쨌거나 돈이 문제인 것 같다. 인터넷의 발달로 연봉이 높은 곳을 찾는 일이 수월해진 것도 이유가 되는 것 같다. 벌어다 나 주는 것도 아니니 나도 못 벌어 본 큰 돈을 벌라고 참견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사십 년 넘는 세월 끊임없이 월급 가져다 준 남편이 고맙고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 셈이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큰 시누이 아들이 미국에서 박사공부 마치고 돌아 오던 날 남편은 해외출장 중이었고 할 수 없이 네 살 조금 지난 아들 태우고 큰 시누이와 김포공항을 갔던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시누이와 수다 떨기 바쁜데 여기저기 돌아 다니던 아이가 엄마 돈 한 장만 줘보라며 돈 벌어 온다고 몇 번을 조른다. 알고 보니 만원짜리 넣고 천원 짜리로 바꾸는 환전기를 보고 눈이 동그래지며 돈 버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그후 시드니로 이민 온 후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때였다. 같은 교회 다니던 집사님 댁이 농장을 시작하더니 팔고 남은 토마토를 갖다 주는데 너무 많아 남아 돌게 되었다. 누나가 작은 종이 상자를 예쁘게 만들어 대여섯 개씩 담고 손으로 쓴 상표 붙여 트롤리에 실어 주니 팔아 온다며 끌고 나간다. 저녁 때가 다 되어 가는데 궁금해 차를 타고 동네를 돌다 보니 길 옆에 앉아 토마토를 먹고 있다. 마지막 박스는 배고파서 먹는다며 다 팔았다고 신이 났다. 확실히 나와는 달랐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수출을 강조하며 눈부신 경제발전에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던 때가 있었다. 새벽마다 새마을 노래가 들려오고 집집마다 단합합시다 재건합시다 라는 표어를 써 붙였고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다. 자연스럽게 경제와 돈에 관련된 책들이 자주 눈에 보이고 관심이 가게 마련이었다. 돈은 꽃이다. 돈 버는 비결 등 보통 사람도 유혹을 느낄만 했으니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잠실이 개발 될 때 소형 아파트를 샀다가 팔아보려고 기웃거리며 설레던 것도 옛일이 되어 기억 속에 남아있다.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하라던 노래를 좋아하며 열심히 불렀던 때문일까. 아니면 정신세계가 더 중요하지 돈을 밝히는 짓은 천박하다는 교육을 받은 때문이라고 대상 없는 원망을 하기도 한다.

시드니로 오고 나서 모든 경제권을 남편에게 넘긴다고 엄숙한 분위기를 잡으며 내주니 이제 주무를 돈이 없다는 말이군 해서 깔깔 웃었다. 칠십이 넘어 간다는 것은 노년이 되었고 말년이 코 앞에 왔다는 뜻이다. 아프지 않고 성한 곳이 손톱 발톱 정도지만 남아 있으니 그래도 횡재라고 혼자 즐거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직도 생각 속에 아쉬운 것이 있으니 돈 전대 허리에 두르고 돈 받고 거슬러 주며 신바람 나는 일 즉 탐스러운 꽃을 꺽는 적극적인 경제활동말이다.

꿈이 아들에게 옮겨 간 것처럼 느껴진다. 월급쟁이는 억울 하다고 자기사업 타령으로 나만 보면 오늘도 내 속을 뒤집는다.

돈. 큰돈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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