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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한인작가회 산문광장 – 백미(白米)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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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白米)의 독백

나는 오래 전에 주인 여자를 따라 호주로 이민을 왔다. 어느 날 그녀는 한국인은 밥이면 다 통한다는 내용의 카톡을 받았다. 어찌 그리 재치 있는 표현과 디테일을 잘 설명했는지 감탄스럽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밥’은 한국인의 많은 정서를 포함하고 있는 일반 명사이다. 밥, 즉 곡기가 끊어짐은 죽음의 의식 앞에서 삶을 내려놓는 첫번째 신호이다. ‘숟가락을 던지다’ 라는 말은 생명이 끊어짐을 예고하는 절묘한 전라도식 표현이다. 그래서 밥을 먹는 행위는 살아있음을 알리는 현재 진행형이다.

평소에 그 여자는 나를 홀대하며 자주 소속 불명의 양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게으름은 무시한 채 밥은 간편함과 영양면에서 합리적이지 않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나를 탄수화물의 주범이라며 밥상에서는 깨작거렸다. 쌀이 넘칠 때는 묵은 냄새와 애벌레로 폐기 처분 되었고 시집 식구들을 초대하며 일품 요리를 대접한다더니 정작 밥 지을 쌀은 한 톨도 없었다. 그럼에도 식탐이 많은 그녀는 갖가지 잡곡들을 영안실 같은 냉동 칸에 장기간 방치했다. 결국 시퍼렇게 질려 있던 나의 동료들은 몸을 녹이기도 전에 부패되어 폐기물로 사라졌다.

얼마전 갑자기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주인 여자는 식품점을 뒤지고 다니며 사재기를 마다한 자신의 안일한 대처를 후회했다. 내가 보기엔 얄팍한 시민의식을 지키는 척 하다 때를 놓친 것에 불과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곳의 쌀을 마치 배급품을 쟁탈하 듯 집어 들고 있었다. 그녀도 십 킬로 짜리 한 포대를 낚아채고는 전리품을 획득한 양 집으로 돌아왔다.  지병이 있는 남편은 퀸슬랜드로 피신했고 독립한 딸들이 거리두기를 과하게 실천한다. 피치못해 성사된 고립을 스스로 선택이나 한 듯 태연했다. 평소에 여자는 자식들의 무소식은 희소식이라며 혼자서도 잘 놀았다. 먹고 마시고 푹 자면서 모처럼의 휴가라 생각하고 책 읽고 글쓰기로 마음을 잡는 듯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위기일수록 내공을 쌓자고 다짐했으나 몸과 마음이 허물어지며 몸살을 큰 병처럼 앓았다. 물 넘기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모습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로 덮칠 기색이었다.

간밤에 여자는 꿈 속에서 노쇠한 어머니를 만난다. 저 나이에도 아프면 엄마가 그리운가 보다. 노모가 공수해 온 작은 돌솥에 의식처럼 불린 쌀을 안친다. 저 돌솥은 노모에게서 받은 유일한 상속품이 될 것이다. 밥 물을 넘치거나 태우지 않겠다고 불 옆을 떠나지도 않는다. 꼼꼼하게 시간을 살피며 눌은 밥에 숭늉까지 만들며 늙은 엄마를 다시 만난다. 한국에서 병석에 누워있는 노모는 딸을 만난 후 곡기가 끊어짐을 갈구한다. 그 딸도 엄마가 떠나기 전 흰 밥을 지어드리고 싶어한다. 속에 편한 부드러운 밥은 노모의 차가운 마지막 길을 따뜻하게 데워줄 지도 모르겠다. 분노도 배알도 없던 그 엄마는 여자의 밥, 호구였다. 세월에 홀대 당한 나도 여자의 엄마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나도 그 엄마의 마음이니 섭섭하거나 원망도 없다.

변화가 생겼다. 시간 죽이기가 두려웠던 여자는 흰 밥을 지으며 기다림을 만나고 순해졌다. 나는 너그러운 사랑을 품고 치유의 힘도 지니지 않았는가. 하얀 밥은 엄마의 눈물이 되어 불안과 상처를 낡은 손수건에 적신다. 밥은 삶의 기본이고 당연함의 진리임을 역경을 겪으며 터득하나 보다.

흰 밥은 곱게 늙은 노인 같이 어질고 담담하다. 시간을 강요하지도 수많은 변화도 그저 수용할 뿐이다. 88세, 미수(米壽)라는 나이는 볍씨가 88번의 공정 과정을 거쳐 밥에 완성 되는 숫자에서 기인한다. 숙연함을 느낄 틈도 잠시, 전자렌지에 이분이면 충분한 햇반의 등장은 불가피하게 진품의 가치를 바꾸어 놓았다. 쌀이 비만의 적이라며 소비가 줄어들자 잡곡이 귀한 취급을 받고 몸값도 올랐다. 그들도 누릴 귄리가 있으니 질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오만하지 않았듯이 기죽지도 않는다. 찰진 흰 밥은 왕실과 양반들만이 누릴 수 있던 기품 있는 밥상의 주역이었다. 품격 있는 고유 전통의 한정식에는 흰 밥이 필수이다. 정통성과 원조라는 으뜸의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잡다한 곡식 들이 섞이지 않은 품위 있는 하얀 색과 자르르한 기름기는 잘 지은 나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공들여 갓 지은 쌀밥은 여러 반찬을 마다한다. 세월을 품은 집간장 한 가지라도 힘을 얻고 찬 것은 물에 말면 장아찌와의 어울림도 담백하다. 또 서양 버터를 내 몸 안에 파묻어 간장에 비비면 색다른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갖가지 이유로 탄생하는 건강밥이라는 낯선 동료들이 부럽지도 않다. 나는 나로서 충분할 뿐이다.

보이지 않는 전쟁, 불확실한 미래, 혐오와 불안이 도처에 숨죽이며 질식의 느낌은 폭발을 잠재하고 있다. 그러나 잘 살아남기 위해, 감히 담담하고 순한 나를 닮기를 바란다. 재앙처럼 찾아온 이 시간을 역으로 오롯이 맞아 정갈한 흰 밥을 지어보자. ‘밥 먹듯이’  글을 읽고 쓰다가 그대로 잠에 빠져드는 무모한 상상은 어떠한가. 그리고 이 기회에 쌀밥에 관한 왜곡된 정보는 제대로 알리고 싶다. 백미와 현미의 식후 혈당 치수는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흰밥을 즐기는 이들의 간식 횟수가 줄어들며 정상 체중을 유지한다는 보고가 증가하고 있다. 정보의 홍수에서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오로지 이 고단한 시기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은 나의 바램이 사족이 되지 않고 더불어 당신들이 ‘밥심’으로 이 위기를 잘 넘겨 행복했으면 좋겠다.


 곽 숙경/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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