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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한인작가회 산문광장 – 인생봇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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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봇짐

여행을 하거나 볼일을 보러 갈 때 나는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간다. 편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 필요한 용품을 담을 수 있기도 하고 옆 주머니에 물통을 넣을 수 있어 간편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홀가분하게 배낭도 메지 않고 그냥 다니고도 싶지만 배낭 없이는 마치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텅 빈 지갑처럼 무언가 아쉽고 허전하다. 하루는 배낭을 메고 막 나서려는데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낸 친구가 나의 집을 찾아 왔다.

 

친구들은 이민 동기생에서 시작하여 직업, 학연, 종교, 취미생활에 이르러 꽤 많은 부류가 있다. 갑자기 찾아 올 때는 무엇인가 문제가 생겨 불쑥 찾아 온 경우이다. 모처럼 왔는데 내 볼 일만 볼 수가 없어 배낭을 멘 채 자리에 앉아 사정이야기를 듣다 보니 배낭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사연인즉 진행하고 있는 건축공사에 부도가 났는데 보험이 없으니 나머지 일을 도와 줄 수가 없느냐 한다. 순간적으로 오래전 내 사업에 문제가 생겨 거센 파도에 휩쓸렸다가 헤쳐 나온 그때의 생각이 뇌리를 스쳐 선뜻 뿌리 칠 수가 없었다.

 

사업을 하는 친구를 만나면 동병상련이라 반갑기도 하고 때로는 무거운 짐을 안기면 어깨가 무거워 지며 버거울 때도 있다. 지인이나 젊은이들에게는 이런저런 세상 살아온 이야기도하고 앞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도 해서 만난 그 자체로 반갑다. 누구든 찾아 오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고 젊은이 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줄 때는 이야기한 보람이 있어 즐겁다. 라이센스 내는 일, 설계 및 공사 등 건축문제, 또는 법정문제나 교육부의 학교문제로 자문을 얻기 위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찾아 온다. 개인 비지니스를 할 때는 내 일이 바빠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는데 산마루 석양에 비친 노을의 탓 일까 아니면 이제 인생이 무르익어서 인지, 무거운 짐을 같이 지며 도와주기도 하고 인연으로 함께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희망을 펼쳐 나가기도 한다.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할 수 없는 일이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 보기도 한다.

오늘 찾아 온 이민 30여년지기 친구의 사정이야기를 들으니 측은한 마음이 인다. 모처럼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다니던 학교도 쉬고 이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볼까 하던 차에 기다렸다는 듯이 또 할 일이 주어진다.

 

어릴 적 농촌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도시로 떠나고, 연로한 할아버지와 어린 나와 누나 이렇게 세 식구가 농촌에 남아 살아야했다. 나와 누나는 일을 분담하여 나는 소 먹이와 나무 땔감을 맡고, 누나는 밥과 빨래, 할아버지 수발에 어린 가장이 되다시피 하였다. 나는 십 리길 먼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나무 땔감을 지게에 메고 내려올 때 지게가 큰 탓에 쓰러지기도 하였다. 같이 갔던 이웃집 아저씨가 지게 짐과 나를 부축하며 멜빵을 조절해주었는데 무거워 비실거릴 땐 쉬어가기도 했다. 지게 작대기를 잘못 괴어 짐이 쓸어 질 땐 지게 중심에 고이며 쉬어 가기도 했다. 그때 도와주었던 그 고마운 아저씨는 지금도 추억의 한 컷으로 떠오른다. 마침내 집에 도착해서 할아버지한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였더니 지게가 크다고 지게 다리를 내 몸에 맞게 톱으로 끊어 주고 멜빵도 딱 맞게 조절해 주었다. 동네 아저씨들 따라 간 겨울철 눈 내린 산에서 무거운 짐은 오히려 미끄러움을 이용하여 쉽게 끌어 옴도 알았다. 인생의 삶도 무거움과 고통에 시달리면 쉬어가기도 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균형을 잃었을 때는 균형을 맞춰 자기 몸에 맞는 짐을 지고 가기도 한다. 땀 흘려 어려운 산마루를 힘들게 넘고 나면 잠시 평평한 들판이 이어지는 듯하다가 이내 다시 가파른 산을 만나 시련과 인내를 요구한다. 이러한 인내와 시련을 극복하고 정상에 발을 딛고 오를 때 희열을 만끽하듯이 인생의 삶도 이러한 것이 아닌지. 하루하루를 편안하게 살수는 있다. 편안한 것만 찾아 짐을 가볍게 지고 산다면 가벼운 짐만큼 만 발전하지 않겠는가. 농촌에서 도시로 자녀를 공부시키기 위해 애절했던 부모님의 이삿짐, 6.25 의 괴나리봇짐, 이민의 짐 보따리 그리고 덤으로 얹어 짊어지는 많은 추억 속의 봇짐들과 역경들은 세월이 많이 흘렸지만 아직도 내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 온 친구의 무거운 짐을 기꺼이 같이 지기로 하였다. 험한 길이 우리를 강하게 해주듯이, 무거운 짐이 어깨에 짊어진 만큼 발전하며 성장하리라 기대하며. 목적지에 도달하여 짐을 풀면 그만한 보람과 행복을 얻게 되리라 확신한다. 오늘도 내가 질 수 있는 허용 한도의 짐만큼 덤으로 얹어 짊어지고 내 기력이 허락하는 한 고통 받는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 벅차고 무거운 짐, 아픔과 고통이 있는 짐은 언젠가 희망이 있음을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상수/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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