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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한인작가회 산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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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수채화

지난해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들이 식구들을 거느리고 그 먼 길을 다니러 왔었다. 어미의 70회 생일을 비롯해서 긴 휴가를 호주에서 보낼 겸 어린 아이들 넷을 데리고 강행군을 한 셈이다. 아이들이 없는 우리 집은 마치 산골에 자리한 절처럼 늘 고즈넉했는데 아들네가 오던 날부터 온 집안이 돌변해 버렸다. 한창 개구쟁이 네 아이로 해서 갑자기 집안의 분위기가 화들짝 깨어나고 있었다. 매일 활기가 넘쳐나고 웃음소리, 우는 소리, 피아노소리, 바이올린 소리, 아래위층을 다람쥐처럼 오르락내리락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 할머니의 고희를 기념하는 날 가족음악회를 열어주었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구슬헤어밴드를 한 일곱살짜리 손녀가 사뿐사뿐 걸어 나오더니 제 어미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입을 꼭 다물고 그 여린 손가락으로 음계를 짚어가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다음 출연자는 여덟 살짜리 큰 손자다. 평소의 개구쟁이 모습을 싹 지운 젊잖은 모습으로 피아노 앞에 앉는다. 제가 뭐 백건우라고 숨을 고르며 폼을 잡고 있다. 이윽고 건반 위에 앉은 단풍잎새 같은 손가락 사이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나의 뇌리에서는 갑자기 최근에 만난 나와 동갑내기인 소설 속의 한 여인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 전 속세와 멀리 떨어진 깊은 산골마을에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던 소설 속의 주인공은 ‘자신의 입으로 들어갈 음식이 젊은이들의 몫이 되어야한다.’며 나이 70이 되자 깊은 산속에 홀로 남아 생을 마감할 각오를 하고 있다. 한 술이라도 자손들 입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하게 하려고 멀쩡한 앞니를 돌에 부딪혀 부러뜨린다. 아들은 가족을 이토록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괴로워하지만 결국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자신도 어머니 나이가 되면 아들에 의해 지게에 업혀 깊은 산에 홀로 남겨질 것을 알고 있다. 다른 대안이 없는 이들은 지게에 얹혀 산에 남게 되는 날 눈이 내리면 천국에 간다고 믿었다. 마침 어머니를 깊은 산 큰 바위 곁에 두고 내려오는 날 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아들은 빈 지게를 지고 눈길을 내려오면서 치받쳐 오르는 슬픔의 덩어리를 펄펄 내리는 그 흰 눈으로 밀어 내린다.

우리나라에서 고려장이라고 전해져 오는 이 말은 충효사상을 중요시한 고려시대에 늙고 병든 부모를 지게에 지고 산에 버렸다는 전설일 뿐, 고려문헌에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고려장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국어사전에서 고려장을 찾아보았다. 고려장: 늙은이를 산채로 광중(壙中)에 두었다가 죽으면 그곳에 매장하였다는 고구려 때의 풍속이라고 나와 있다. 나는 다시 광중의 뜻을 찾아보았다.
광중: 주로 시체를 묻는 구덩이 속, 지실(地室)이라 나와 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에는 살아있는 늙은이를 산채로 땅속에 묻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는 소설 속처럼 늙은이를 지게에 져서 산속에 버리는 것보다 더 잔인한 처사였다는 생각이 든다.
매스컴에서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보도를 접한 일이 있다. 그 예는 대개 이랬다. 요양시설에 병든 부모를 보내 놓고 입원비를 체납한 채 몇 년이 지나도록 찾아오지도 않고 아예 행방불명인 자식들, 가족들의 냉대와 방치로 외롭게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들, 치매 어머니를 버린 아들, 효도관광 시켜준다고 어머니를 한국으로 데려와 공항에서 버리고 간 해외동포도 있었다. 마치 애완용 개를 성가시다고 매정하게 멀리 떨어진 곳에 버리듯 부모를 방치하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고 한다. 버림받은 부모는 그래도 자식이 보고 싶어 눈물짓는데 자식들의 이기주의는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고 있다. 고령화가 되면서 바야흐로 노인들의 수난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눈부시게 경제발전을 한 만큼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복지국가 소리를 듣게 되어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수치스러운 말이 사라지는 날은 언제 올 것인가. 물질의 풍요 속에서 혈육의 정이 냉혹 해지는 이런 현상이 우려스럽기만 하다.

할머니의 고희 축하 콘서트가 끝났다. 손자손녀들이 한꺼번에 내 앞으로 몰려와서 나를 끌어안고 할머니 사랑해요를 연발해댄다. 나도 독수리 날개처럼 양팔을 펼치고 아이들을 한아름으로 안으며 할머니도 너희들을 사랑해 하고 화답했다. 아, 얼마나 감사한가. 이렇듯 따뜻한 혈육의 체온에 묻혀서 나는 오래도록 헤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이 각박한 세태를 살아내고 있는 동시대의 노인들 중에서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권영규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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