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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한인작가회 산문광장

[사진은 작가가 보내온 유화 그림 ‘갠지스강 가는 길’. ]

인도의 향기

델리에 도착하다, 오후 5시 30분. 겨울의 저녁과 나의 인도 여행이 시작되는 시각이다. 공항 청사 안과 바깥공기, 하늘빛이 모두 회색으로 가득한 것 같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스모그일까? ‘회색의 도시’이곳을 생각하면 언제나 따라붙을 첫인상이 안타깝다. 입국 완료, 건장한 인도 청년 Vicas가 열여섯 명의 여행객을 반긴다. 대학에서 한국학을 전공했다는 그는, 꽤 유창한 한국말로 자신을 박카스(드링크)로 기억하라고 주문한다. 오래전 개그 콘서트의 인도청년 비앙카가 생각나서 피식하고 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그때 나는 가무잡잡하게 분장한 개그맨이 정말 인도에서 온 청년인 줄 알았었다.
초저녁의 어두움과 거무스름한 구름, 연기에 싸인 도시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13억 인구의 소음과 릭샤를 포함한 13억 자동차의 경적소리, 13억 개의 빗방울 속에서 델리의 저녁이 거뭇거뭇하게 저물어간다. 시 외곽지의 공항에서 또 다른 외곽지에 있는 숙소까지는 한 시간여의 거리라지만 혼잡한 교통사정으로 80분, 100분, 두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박카스는 설명한다. 시간의 개념이 무한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하며 이천만 명의 델리 시가지를 잡아당겼다가 풀어놓았다가 하는 걸까? 버스는 덜컹거리며 1990년대 ‘City of Joy’(캘커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의 길거리를 내달린다. 동물들과 그 오물들은 어둠 속에 파묻혀 있으나 길가에 즐비한 작은 천막가게 어린 주인들의 미소가 밖을 향한다. 엄마 아빠는 어디에 갔을까? 이젠 칸델라 불빛이 아닌 LED 조명 아래서 검고 맑은 눈동자들이 별이 되어 반짝거린다. 뜻밖에 만나는 반가운 사람처럼 쾌적한 공기의 호텔 안에서 첫 인도여행자들은 모두 안심하며 잠자리에 든다.

이튿날, 호텔 0층에 자리한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다. 내 생애에서 0층에 있어본 적은 처음이다. 없는 층, 제로의 공간, 마법사의 구역인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 표시판 숫자인 -1, ㅇ, 1을 보며 잠깐의 혼란을 겪었으나, 마법학교 호그와트에 가는 킹스크로스 역의 9와3/4 승강장에 선 해리가 되어 유쾌한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나도 오늘 한낮쯤에는 마법의 도시에 가 있을 테지. 정녕 ‘없는 층’에서 포트키를 타고 기원전의 도시로 한발자국 내딛을 테지. 비릿한 녹두 싹을 박하소스에 끼얹어 먹는 샐러드를 난생 처음 먹어보고, 검은 올리브를 얇게 썰어 올린 생선 요리도 처음 맛본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과 처음 가보는 장소, 음악, 그림 , 만나는 사람들… 왜 나는 이렇게 ‘처음’에 환호하는가?
비는 그쳤으나 어제와 같은 날씨이다. 창조주는 보시기에 좋은 것만 만들었다는데, 인간은 자신이 먼지에서 온 것(창세기)을 깨달았는지 그 위대함을 계승하여 끊임없이 먼지를 생산하며 하늘과 해와 구름, 나무, 보기 좋은 피조물을 가리고 파고들며 조물주를 위협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에서 곧장 국내항공편으로 바라나시로 이동할 예정이어서 그곳의 쾌청한 날씨를 기대한다. 인구 85%이상의 힌두교도인, 이들 최고의 성지가 아닌가.

아, 또 다른 연기의 도시 바라나시, 델리의 스모그가 중간 회색이라면 여기는 잉글리시 겨자소스의 밝은 노란색 연기가 성지를 채우고 있다. 오후 5시, 자전거 릭샤에 두 사람씩 나뉘어 타고 갠지스 강을 향하다. 릭샤꾼의 어깨에 힘이 실리고 그의 등에서는 후드득 땀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날빛은 사그라지는데 삶은 깨어나는 그 길을 달린다. 몇 킬로미터의 이 여정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카오스, 카르마, 무질서의 질서, 치열…. 릭샤들의 빵빵거림 속에서, 길 양 옆의 갖가지 상점들의 휘황한 조명아래서, 순례자들은 성스러운 강을 향해 달리거나, 걷거나, 겅중거리며 내닫는다. 옷가게를 지나고 과자가게, 성물가게, 예술품 가게를 지난다. 어슬렁거리는 소들과 비루먹은 개들, 저녁인데도 울어재끼는 수탉 사이를, 이 엄청난 부정교합 사이를, 가는 이와 오는 이는 혼돈의 질서를 만들며 나아간다. 꽉 찬 겨자색 먼지와 소음, 카레와 과자 냄새, 그리고 사람의 냄새…그렇게 인도의 향기를 내뿜으며 바라나시의 강가(갠지스 강의 힌디어)는 매순간 새롭게 태어난다.

릭샤에서 내려 가트(강물에 맞닿아 있는 계단으로 바라나시에는 약 100개가 있다)로 가는 길에 들어선다. 좁은 길 양쪽에는 구걸과 죽음을 기다리는 성자들(?)의 무리가 몸을 최대한 축소시켜 애원의 눈짓을 보낸다. 점점 크게 들려오는 범어의 기도소리, 매일 밤마다 열린다는 힌두교의 제사의식인 ‘푸자’가 벌써 시작되었나보다. 단 위에 피어오르는 향불 냄새와 북소리,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제사장들의 기도소리는 수많은 순례자와 관광객을 압도시킨다.
‘당신의 업을 이 성스러운 강가에서 끊어버리고 새로운 윤회의 고리로 들어가시오. 지금은 수드라, 바이샤지만, 다음 생에는 브라만과 크샤트리아로 태어날 수 있소. 힘내시오. 기도하시오.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시오. 빈털터리는 행복한 것이오.’ 내 두뇌에서는 좀 이상하게 풀이되는 기도소리가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비추는 신들의 광고탑 위에서 명멸한다. 우리도 순례자가 되어 보트에 오른다. 배는 가트에서 멀어져 강물을 가른다. 주황색 사리를 걸친 소녀가 초가 들어있는 꽃 접시를 준다. 우리는 염원을 담아 어두운 강물에 띄운다. 컴컴한 강물 위 여기저기서 반짝이며 흘러가는 꽃불들…. 그런데 갑자기 작은 배가 나타나며 ‘방생’하고 외친다. 작은 물고기를 몇 마리 담은 망태기 하나는 $10, 조금 큰 것은 $20이다. 나는 물고기들의 악 윤회를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물고기를 사지 않는다. 또 한 번의 깜짝쇼가 벌어진다. 어느 틈에 우리 보트에 올라왔는지, 어떤 이가 우리 이마에 박하 향이 나는 흰줄을 긋고 미간에는 붉은 점을 찍어준다. 그리고는 행운을 빌어 주었다며 $1씩 거둬간다. 느림의 미학이 재빠른 장삿속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밤배는 통통거리며 장작불이 피어오르는 가트로 다가간다. 24시간 운영되는 화장장이다. 이곳에서 화장되는 게 힌두교인들의 큰 소망이라고 했던가. 이십여 군데에서 불꽃이 넘실거린다. 촬영을 금지한다고 했으나 조금 멀리 떨어진 배 위에서 우리는 쉬지 않고 셔터를 눌러댄다. 연기와 빛으로 사라지는 영혼을 필름 속에 담기라도 하듯…. 다시 배를 돌려 다른 가트로 향한다. 1월, 이곳의 겨울, 그리고 밤인데도 강물에 목욕하며 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도 전역의 힌두인들이 평생에 한번은 찾아와서 몸을 씻고 마시고자하는 성스러운 생명수, 나도 보트에서 팔을 뻗어 강물에 손을 담궈 살며시 저어본다. 의외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만나는 ‘강가’이다. 내친김에 손끝에 맺힌 물 한 방울을 입안에 토옥 떨어뜨린다.
아귀다툼 같은 생과 사의 혼돈으로 빠져버릴 듯 한 갠지스 강으로 가는 길, 그 좁은 길이 표현하는 비참함이 내 눈 가를 촉촉이 적시기도 했으나 이제는 현상을 받아들이며 스르르 현실로 돌아온다. 그들이 지저분하며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겠다. 그들은 치열하게 생의 한가운데를 살고 있다. 바라나시는 관광객이 순례자가 되어 자신의 위치로 돌아오는 곳. 밤 이슥히 기다린 포트키, 릭샤를 끄는 그의 어깨와 등판은 단단하고 굳세며, 강가의 숨결마냥 넓고 포근하다.
친구여,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의 세계에 가보고 싶다면 인도에 가라. 갠지스의 일몰과 일출을 보러 바라나시의 거리를 걸으라. 시와 글이 용솟음쳐 나오는 그곳에 가면, 수천 명의 신들이 그대를 돕는다네.

 

김인숙/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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