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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수 칼럼 – 시드니 스캔들 (제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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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캔들’의 어원은 원래 헬라어 ‘스칸달론’이다. 스칸달론은 ‘징검돌’ 혹은 ‘걸림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돌’이 사람에 따라서 ‘징검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내가 사는 동네

태어나서 지금까지 기억 할 수도 없을 만큼 이사를 다녔는데 호주에 와서야 비로소 한 곳에서 오래 살게 되었다. 호주에 처음 와서 도시 중심가에서 10 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집에서 13년을 살았다. 교통이 좋은 대신에 집 상태는 귀신이 살다가 방금 이사를 간 집 같았다. 다음에는 시티에서 35 km나 떨어졌고, 기차역도 멀어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런데 지금의 집과 이전에 살던 집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남의 집과 내 집이라는 것이다. 내 집을 마련하고 이사를 온 후 여러 가지 달라진 것이 있었다. 오랫동안 세를 주었던 집이어서 겉은 멀쩡한데 구석구석 손 볼 곳이 너무 많았다. 고장이 나거나 완전히 없어진 부분을 보면 대부분이 애초에 드라이버로 나사를 조금만 조이면 되는 것이었지만, 임시로 사는 세입자들이기 때문에 망가진 채로 그냥 사용하다가 떨어져나가 없어지고 나중에는 완전히 못쓰게 된 것들이었다.
처음에 이사를 와서는 이것저것 수리를 하다 보니 손재주도 없는 사람이 목수, 전공, 배관, 미장까지 해보게 되었다. 일마다 사람을 부르자니 인건비가 비싸고 일의 양도 많지 않은 일이라서 내 손으로 직접 했는데 힘만 들고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일하는 방법도 모르고 연장도 없고, 오직 힘으로만 하려고 하니 제대로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사는 연장도 기술도 없이 오직 힘으로만 사니 막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일을 하다가 막혀서 어쩔 줄을 모를 때 전문적인 경험과 기술이 있는 사람이 조금만 도와주면 큰 도움이 된다. 이렇듯 인생살이도 옆에서 조금만 거들어주면 큰 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이 필요한 것이다.
실수를 해서 일을 망치고 나서야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인데 그것을 몰랐구나.” 하면서 뒤늦게 도를 닦았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집수리…” 주문을 외우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내 집에 대한 관심을 넘어 점점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는 비교적 저소득층인 전형적인 노동계층들이 사는 동네이다. 그런데 쇼핑센터를 갈 때마다 먼저 살던 도심 주변 동네의 세련된 쇼핑센터에 비해서 초라함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내가 살 물건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쇼핑센터의 모습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달라 보인다는 것이다. 먼저 동네 사람들보다 옷 입은 모양도 남루하고 후줄근하다. 옷만 그러면 괜찮겠는데 생긴 것들이나 체격들도 어쩐지 시원치가 않아 보인다. 실제로 백인들 사회에서는 돈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뚱뚱한 사람들이 적지만 가난한 사람들 중에 뚱뚱함을 지나서 비만인 사람들이 많다.

뒷집에는 빌이라는 70 대 노인 부부가 살고 있는데 그 집과 우리 집 사이의 담장이 너무 오래되어서 완전히 무너져 버려, 두 집 사이는 잡나무와 줄기 식물들로 얽혀서 있지만 대강 보이지 않아서 피차간에 사생활은 보호되는 편이었다. 처음에 이사를 와서 빌에게 담을 새로 하자고 하니까 자기는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빌이 자기 집 쪽의 정글을 정리하기 시작해서 집 사이가 휑하니 뚫리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판자를 가져다가 대충 막아놓았더니 빌이 담을 세우자고 했다. 혹시라도 뚫린 구멍으로 누가 우리 집 수영장으로 들어가서 빠질 수 있으니까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빌은 우리 집 수영장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아이도 없고 개도 없이 노인 부부만 살고 있지만 나이가 많은 빌이 걱정하는 것은 앞으로 양로원에 들어 갈 수도 있고 집을 팔 수도 있으니 혹시 언젠가 자기 집 쪽에서 무엇인가가 넘어와서 우리 집 수영장에 빠질지 모를 일을 걱정하는 것이다. 70 대 중반 노인이 안전에 대하여 이 정도로 신경을 쓴다니 이 사회의 단단한 밑바닥을 보는 느낌이었다.

 

지성수 / 목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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