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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호주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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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지나간 날들이 사전보다 두껍게 쌓여진지 이미 오래이나 아직도 찾아오는 첫 경험들로 즐거운 인생이다.
작년 말 크리스마스 직전, 작심하고 무작정 사무실을 찾은 사람이 있었다. 은박 위스키 종이상자가 들어있는 면세점 가방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선 중산층 차림의 중년여성으로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였다. 담보 없이 친구에게 빌려준 거액을 돌려받지 못해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개인파산과 가정파탄을 직면하고 있다는 내용을 눈물로 쏟아냈다.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털어놓았으나 결국 해결책이 없음을 직시하고 일어서며 앉아있던 의자 옆에 서있던 면세점 가방을 조심스럽게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워낙 형편이 나빠서 상담비 대신…” 말끝을 흐리는 그녀에게 변호사는 상투적으로 “괜찮은데 가져가시지요” 답변했다. 술을 즐기지 않는 변호사는 내심 상담비를 원했으나 자초지정을 듣고 나니 돈도 선물도 달갑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나 면세점 가방 모두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다.
햄릿의 대사 중에 “Neither a borrower nor a lender be. For loan oft loses both itself and friend.” 명언이 있다. 돈을 빌리고 빌려줌으로 돈과 친구 모두를 잃는다는 말이다. 허구한 날 돈 뜯긴 이야기로 정작 호주은행에서 담보 없이 대출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한국사람들 중 고향선배, 학교후배, 교회집사, 딸 친구 엄마에게 수십만 불도 빌려주었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 속담을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가 애당초 어떻게 믿음의 대상이 되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다.
‘평범한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생색낼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꽃’이라던 꽃집아들 친구의 논리와 달리 변호사는 아직까지 사무실에서 꽃을 선물 받아보지 못했다. 선물로는 머니머니 빼고 술이 으뜸이다. 포도주 아니면 위스키가 일반이고, 안동소주도 있었다. 여성 변호사에게도 술을 선물하는지 알고 싶다.
문의/사무실 방문 시기도 그다지 놀랍지 않다. 섣달그믐(12월31일)과 정월 초하루(1월1일),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이브에 걸려오는 상담 문의 전화에 변호사는 익숙해진지 오래다. 언제 인생의 대소사가 예약을 하고 찾아오던가. 1월1일 파라마타 경찰서 지하실 유치장에 갇혀있는 아들을 찾아가는 아버지를 대동한 적도 있었고 교통사고로 뇌 수술실에 들어간 피해자의 부모와 병원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도 있었다. 2019년 12월31일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는 한 남자로부터 이혼문의 전화를 받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딱한 여성이 사무실을 떠난 지 몇 시간 후 눈앞에 얼쩡거리는 면세점 가방에서 달갑지 않은 술 상자를 꺼내들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마시다 세상을 떠났다는 욕 비슷한 이름의 위스키 종이상자를 열어 술병을 꺼내자 이게 웬걸? 1/3정도 비어있는 병이 나왔다. 병뚜껑이 쉽게 열리는 것을 보니 누군가 이미 시음해본 술이었다. 설마 박정희 대통령이 마시다가 변을 당한? 여인이 마시다 가져온 것일까? 남편이 마시던 술일까? 마시던 술병을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한 질문들이 꼬리를 잇던 와중 뜻밖에 찾아온 ‘헌 술’의 첫 경험을 만끽하며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유는 상관없다. 첫 경험을 선물 받은 기쁨으로 2019년 마지막 일주일을 행복하게 버틸 수 있었다.

면책공고 Disclaimer
위의 내용은 일반적인 내용이므로 위와 관련된 구체적 법적문제는 변호사의 자문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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