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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수 칼럼 – 시드니 스캔들 (제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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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캔들’의 어원은 원래 헬라어 ‘스칸달론’이다. 스칸달론은 ‘징검돌’ 혹은 ‘걸림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돌’이 사람에 따라서 ‘징검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가족과 콩가루 가족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에 둘을 꼽으라면 예수와 마르크스라는 두 유태인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은 두 사람의 생각은 대부분의 일치하는 것이었지만 머리가 나쁜 그의 추종자들 때문에 원수가 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비극이 오늘도 연출되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생각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공동체주의’여서 역설적이게도 완벽한 공산주의는 신앙 안에서만 이루어질 질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공동체주의를 신봉하는 이유이다. 나는 평생 공동체를 추구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이상적인 공동체라면 거리를 따지지 않고 갈 수 있는 대로 방문해서 경험해 보기도 했다. 시드니에서도 어떻게 하면 공동체적임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 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기회가 찾아 왔다.
10년 전 갑작스런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마음이 허전했던 40대들 몇몇이 무엇인가를 해보자고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시드니 큰 가족 ’이 만들어졌다. 목표는 ‘이민자로서 어떻게 하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화두를 놓고 공동체적 삶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인류의 역사 중에 가장 오래된 가족형태는 대가족제도다. 인류는 오랜 동안 3, 4대에 거쳐 노인과 아이들이 삼촌, 사촌들과 함께 살면서 서로 배우고 다투며 살았다. 그러나 산업사회는 더 이상 그런 형태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핵가족을 넘어 독신 생활이 흔하다. 함께 사는 부족시대에서 완전 콩가루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대가족제도는 다시 돌아가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인류의 이상향이다. 그러나 이민 생활에서는 그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선 주거 형태만 하더라도 큰 집이 얼마든지 있고, 이민 생활이란 것이 비교적 단순하고 투명하기 때문이다. 우선 무엇보다도 함께 모여 살면 모든 것이 경제적이다. 가장 단순한 예를 든다면 집집마다 있는 모뎀이 하나면 된다. 그러나 문제는 함께 살만한 인간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함께 하기로’ 하고 8 가정이 모여서 ‘시드니 큰 가족’을 시작했다. 처음 모였을 때는 마치 첫 사랑을 하듯 서로 간에 상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2 주에 한 번 토요일에 전 가족이 모였는데 함께 할 일이 많아서 토요일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또 모두가 토요일에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중간에도 틈틈이 만남을 가졌다.
이민 사회에서 외로우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몇 가정이 아주 친밀하게 지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적’ 분위기가 ‘가축적’ 분위기로 변해서 찢어지고 갈라져 싸우고 원수 되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마음속에 공동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큰 가족은 개인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고국에 대한 향수뿐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나이에 상관없이 젊은 시절 세상을 바로 잡겠다고 뛰던 정열을 가슴 속에 깊이 묻고서 남의 땅에서 몸 붙여 사는 자들의 고독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큰 가족은 어차피 남의 땅에서 살다가 죽을 팔자이니 살아서 가족 같이 살고 죽을 때 서로 관을 들어 줄 사이가 될 수 있는 짝퉁 가족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되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좋은 것일수록 지불해야 할 대가가 높은 법이다. 생긴 대로 놀고 자기 하고 싶은 데로 해서는 될 일이 아니고 서로가 다듬어지고 훈련하고 닦여야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를 중심으로 해서 모였고 목사이고 나이를 제일 많이 먹었다고 해서 큰 가족에서 어떤 지도적인 입장에 있지 않았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나는 3년간 지속된 모임에서 한 번도 5분 이상 내가 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다른 사람 보다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배려를 더 많이 하면서 아이디어를 내는 정도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같이’ 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은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방어적 태세를 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것조차도 경계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전혀 다르게 생긴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은 할 수 있어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는 한 공간에서 같이 숨을 쉬는 것도 어려울 때도 있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함께’ 하기는 쉽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함께’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모자이크는 제각기 다른 색깔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어려운 일이기는 하나 다름을 수용해서 조화를 만들어 내는 훈련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행동이다. 
3년 동안 같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같이 하면서 창조적이고 재미있고 뜻있는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예를 들면 휴가를 같이 보내고 누가 집을 사면 모든 가정이 달라붙어서 집수리를 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3년 만에 콩가루 가족이 되었다. 역시 예수와 마르크스의 완벽한 조합이 아닌 공동체는 유지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지성수 / 목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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