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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수 칼럼: 시드니 스캔들 – 제1화

[나는 내 생애 한국을 떠나려고 3번의 시도를 했다 ]

* ‘스캔들’의 어원은 원래 헬라어 ‘스칸달론’이다. 스칸달론은 ‘징검돌’ 혹은 ‘걸림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같은 ‘돌’이 사람에 따라서 ‘징검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내 생애 한국을 떠나려고 3번의 시도를 했다

첫 번째 시도는 군대에서 월남에 근무 할 때였다. 1972년에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한 것을 알고 나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은 한국에 돌아가서 살 수가 없다고 판단해서 캄보디아로 도망을 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행동반경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는 일개 사병으로는 실행에 옮길 수가 없는 일이어서 결국 공상에 그치고 말았다.

두 번째 시도는 1986년도 이었다. 빈민촌에서 활동을 하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천신만고 끝에 비자를 받아 미국까지 갔었다. 그러나 가족을 남겨 두고 혼자서 가기도 했지만 후 박종철이 고문을 받다가 죽은 소식을 접하고 두 달 만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돌아오고 말았다.

삼세 번이라더니 드디어 1996 년에 세 번째 시도에 성공해서 무사히 대한민국을 탈출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농사지을 땅을 다 빼앗기고 만주로 떠난 선조들을 보고 ‘이민’이라고 하지 않고 ‘유민’이라고 했다. 정든 고향을 떠나 정처 없이 살 곳을 떠나는 것을 유민이라고 한다. 한국이 IMF를 만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해외로 일거리를 찾아서 떠나서 ‘IMF 유민’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호주로 이민을 온 것이 아니고 유민으로 온 셈이다.

나도 전혀 예측 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호주 땅을 밟았었다. 숨 쉬는 일 빼놓고는 모두 일에 돈이 드는 외국생활이 만만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시계 각지를 떠돌며 한 끼니의 음식이나 하루 밤의 안식을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아프리카의 난민들에게는 정말로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이민의 삶도 피곤할 때가 많다.

맨손으로 호주에 온 교민들은 남자가 군에 입대하면 훈련소에서 받아야 하는 기본훈련처럼 하는 일이 청소와 하숙이다. 우리 집도 처음에 하숙생을 치는 일부터 시작했다. 몇 해 동안 수십 명의 중학생 고등학생 청년들이 지나갔다. 그런데 하숙생을 데리고 있다가 보니 경제적으로는 도움이 되었지만 생겨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가장 큰 한국인의 공통점은 물불을 못 가린다는 점이다. 용감하다는 뜻이면 얼마나 좋겠는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뜻이 아니라 전기와 수도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즉 절약을 모른다는 뜻이다.

한국 학생들이 보여주는 재주는 빈 방에 불 켜놓기, 가득이나 물이 부족한 호주에 와서 삼천리금수강산 출신 아니라고 할까보아서 사워를 할 때 물 많이 쓰기, 나갈 때 방문 열어 놓고 다니기 등등 재주도 여러 가지다.

그 다음 한국 아이들의 공통점은 손가락 하나 까닥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주에서는 아주 어린 자녀들도 청소나 저녁을 준비 할 때 식탁을 놓는다든지, 청소기를 돌린다든지, 화장실을 치운다든지 한가지 씩 일을 돕는다.

같이 생활해야 하는 하숙생에게서 이런 문제점이 보일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차피 돈 받고 하는 일이니 무관심하게 못 본체 내버려두는 것이고 또 하나의 방법은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부모를 대신해서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을 시킨다고 잔소리를 하면 한국에 있는 부모들은 무조건 아이들 말만 듣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이만 나빠질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 아니 거의 전부가 무관심하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교민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 관계가 나빠지기 때문에 절대로 친척이나 친구들 아이들은 데리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결국 하숙생을 데리고 있는 것은 경제적인 면만 제외하면 잘해야 본전인 셈이다.

크로이돈 역 앞에 있던 집이 허름하기는 해도 방도 많고 교통이 좋아서 하숙생뿐만 아니라 친척, 친지, 오다가다 만난 사람, 아들 친구, 친구의 친구 등등이 거쳐 갔다. 그 많은 사람들을 겪다보니 나름대로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이 있었다. 생활이 어려운 가정에서 겨우 겨우 공부를 해온 사람들은 실수는 하지 않는데 너무 너무 여유가 없어서 옆 사람까지 숨이 막힐 지경이고, 돈 많은 집 자식들은 여유는 많아서 좋은데 옆 사람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는 일이 종종 있더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집에 돈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백배는 좋지만, 돈이 많은 것이 없는 것보다 천배나 나쁜 경우도 가끔은 목도할 때가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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