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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산문 정기 기고>

[]

지금 넌 어디 있니

집앞에서 놀던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세살. 제발로 걸어 다니니 가끔 공기처럼 사라지기도 하여 대수롭지 않았다. 시간이 길어지자 주변의 허공에 대고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아이가 곧잘 가는 가까운 슈퍼마켓과 문방구를 둘러보았다. 그 이외에 아이가 갈만한 곳은 없었다. 세탁소, 식당, 목욕탕도 갈 곳은 아니다. 초조함이 1분, 2분을 지나 시간에서 시간으로 넘어갈 때는 평생을 살아온 것보다 길게 느껴졌다. 나의 뼈와 살에서 나온 아이를 잃는다면… 헉헉, 마른 울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은 1월 26일 호주의 국경일인 오스트레일리아 데이 이다. 1788년 1월26일 필립 아서 선장의 지휘 하에 영국 제1함대 선원들과 영국계 유배 이주민들이 호주에 상륙했다. 탐험가들의 눈에는 사람처럼 생긴 짐승인 것 같다고 표현했던 원주민들에게서 나라를 빼앗은 침략의 날이자 식민지 탄생일이기도 하다. 수 만년의 역사를 딛고 일어선 신생의 승리를 공휴일로 정하여 축제의 도가니에 빠진다. 이민자로 살아온 지 17년. 시민권 취득 후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호주시민으로 살면서도 나는 늘 물에 뜬 기름처럼 언어도 문화도 겉돌았다. 아무리 휘휘 저어 섞어도 물을 헤치고 동동 뜨는 기름처럼. 격리의 세월은 고국과 나 사이도 멀어지게 했다. 애틋했던 내 나라와 부모 형제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시든 꽃처럼 저절로 수그러들었다.

이제는 나도 호주의 날을 만끽하며 이방의 고독을 벗어나리라. 국경일에도 일을 나간 호주시민 남편이 점심때쯤 돌아왔다. 지쳐서 눈이 나른한 그를 닦달해서 점심은 행사장에 가서 먹자고 했다. 많은 행사가 열리는 시티 록스(Rocks)로 차를 몰고 갔다. 나의 관심을 끌었던 휠체어 달리기는 이미 끝났을 터여서 아쉬움이 있었다. 하얀 캐노피 지붕의 노천시장이 북새를 이루고 있는 록스에 도착했다. 쏟아 부은 듯한 인파가 출렁였다. 흥분은 뒤로, 주차할 곳이 있을까 눈을 번득였다. 바닷가 근접한 도로에 기적처럼 주차 공간 하나가 있었다. 마치 고른 치아 중에 이 하나가 빠진 것처럼 쏙 빠져있었다. 순간 평소 선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내린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듯한 진한 감동이 밀려왔다. 행운일망정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표지판을 신중히 확인해 보았다. 토요일 8am-12pm 이후로는 주차가 허용된다는 사인이 있었다. 시계를 보니 1시30분 이었다. 주차위반이 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마침 빈자리 바로 옆에는 경찰차가 세워져 있어서 더욱 보호받는 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경찰차와 우리 차 그리고 수많은 차들이 일렬로 촘촘히 박혀있는 것을 망막의 렌즈에 찍고 자동차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바닷가로 진입했다.

바닷가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임시로 세워진 가관리소에서 두 명의 검사자가 소지품을 검사했다. 행여 무기가 될 수 있는 술과 유리병 등을 단속했다. 35도C를 육박하는 더위지만 그늘에서는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주요 행사는 다 끝나고 지친 듯 열정없이 지나가는 몇몇 퍼레이드 행렬을 보았다. 경기가 끝난 젊은 휠체어 선수들이 아찔하게 기구를 조절하며 몰려다녔다. 젊다는 것은 장애의 상태에서도 패기가 있었다. 여객선 터미널 주변으로 스낵과 아이스크림을 파는 스톨이 여러 군데 있었으나 점심을 먹으려고 뮤지엄 아트 4층에 있는 카페로 올라갔다. 툭 터진 카페에서 내려다본 전경은 하버브릿지,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서큘라키가 한눈에 펼쳐 보였다.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우리 부부는 마주앉아서 각자의 휴대폰을 꺼내어 들여다보았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바로 옆의 테이블에는 두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늙고 한 사람은 젊어서 부자지간인 듯도 하고 형제지간인 듯도 보였다. 그들은 음식이 나오자 각자의 음식을 반씩 나누며 와인 잔을 건배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잔 부딪는 소리에 벌써 취한 듯 그윽했다. 아마도 동성 연인 사이인 것 같다. 우리도 다음에는 일찍 나와서 행사에도 참여하고 벌건 대낮에 와인을 마시는 호주시민이 되어보리라 생각했다.

아쉽지만 올해는 이 정도만하고 집으로 가자. 주차한 곳은 밖으로 나가면 첫 도로 왼쪽 코너 눈감고도 찿을 수 있다. 우리 차를 보호하고 있는 경찰차가 바로 보였다. 그런데 마술처럼 나의 흰색 자동차가 검정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별난 우연처럼 차종과 모델도 똑같았다. 진열장의 장난감이 반짝 들려서 교체된 것처럼 검정차가 서 있었다. 길 건너에 경찰이 있었다. 나는 사색이 되어 미아신고를 하듯 말했다. 우리차가 없어졌으니 어찌된 일이냐고.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이 주차지점을 착각했거나 누가 훔쳐갔거나 아니면 견인되었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는 자세히 알아보아 주겠다며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견인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견인의 이유를 물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경찰차 앞의 표지판을 가리켰다. 호주의 날 임시 주정차 표시가 장승처럼 높이 우뚝 서 있었다. 높이 보았어야만 했다. 그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내차 앞으로 세워졌던 많은 차들은 왜 그대로 있었을까? 그는 견인 장소를 알려주며 차를 찾으라고 했다. 걷기에는 거리가 멀다며 택시를 이용하라고 했다. 경찰은 근처에 상주해있던 택시 기사에게 견인 지점을 말해주며 자신의 업무를 마무리했다. 차를 타고 간 견인지점은 특정 집합장소일 거라는 나의 예상을 깨고 공원을 끼고 있는 빌딩가의 도로변이었다. 공원 주변을 돌며 도로에 주차된 차들을 주시해야만 했다. 기사와 우리 부부가 애를 태웠으나 찾을 수 없었다. 느린 속도로 세 바퀴를 돌았다. “DDV 58H야~” 눈동자가 소리쳤다. 기사는, 자신은 영업을 해야 하니 우리에게 내려서 찾아보라고 했다. 내린 지점에서 앞으로 걸으며 주변을 이 잡듯 돌았으나 차는 보이지 않았다. 입속에 침이 바짝 말랐다. 내 신체의 일부 같은 차를… 아직 할부도 끝나지 않은 내 차를….

지금 넌 어디있니.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 이런 것인가? 그렇게 불러도 보이지 않던 그것이 숨바꼭질하듯, 땅에서 솟은 듯 바로 앞에서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 옛날… 나의 애간장을 녹이고 억겁의 몇 시간이 지난 후 재재 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내 아가처럼. 호주시민이 되고 싶었던 오늘 아무래도 눈뜬 장님의 운세에 휘둘린 것 같다.

 

이항아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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