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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산문 정기 기고>

[김인숙]

별, 볼일을 보다

지난 여름, 친구 S와 뉴질랜드 북섬을 여행하였다. 무턱대고 떠나 보자는 식의 S와는 달리, 나는 비교적 꼼꼼한 일정표를 만들길 원했다. 가능하면 그곳을 샅샅이 훑어보고 즐길 생각으로, 친구를 만날 때마다 계획 점검을 다그쳤다. 지금 돌이켜보니, 인간이 만든 시간의 흐름을 맛있는 음식 만들 듯 요리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우스운 짓거리인지 헛웃음이 나온다. 자연과 인간애의 순수한 교감을 탐구함이 무릇 길떠남의 과정과 목적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240시간, 열흘 중에서 단 한 시간 남짓 머문 그곳이 <시간의 점>이 되어 행복한 별 하나를 반짝이게 한다.

오클랜드에서 짐을 풀고, 북섬의 끝자락인 베이 오브 아일랜드(Bay of Islands) 지역으로 향했다. 그 땅에서 원주민인 마오리족 추장들과 영국 국왕 대표 사이에서 맺어진 뉴질랜드 건국문서인 <와이탕이 조약>의 뜻을 새겨본 다음, 배를 타고 자연의 조각품 홀 인 더 록(Hole in the Rock)을 구경한 후, 잽싸게 카우리 숲으로 가서 세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숲의 신 타네 마후타를 만날 계획이었다. 꽉 찬 시간표인데도 빠뜨린 건 없나 인터넷 창을 열어보니, 가는 중에 카와카와(Kawakawa)라는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그 곳의 특별한 화장실에 꼭 들르라는 안내가 뜬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감미로운 바람이 불며 마음의 풍선이 부풀어 오른다.

몇 년 전 서울을 방문 했을 때, 세종 미술관에서 예술가 훈데르트 바서(Hundert Wasser 1928-2000)의 작품들을 접하였었다. 오스트리아 출생으로,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다가 뉴질랜드에서 마지막 꿈을 펼친 그에게는 ‘색채의 마법사, 건축 치료사, 평화와 환경 운동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건축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노력한 그의 마지막 건축 작품이 카와카와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자동차로 두 시간여를 달려, 여느 시골 마을처럼 한가롭고 아담한 그 곳에 도착하였다. 어리석게도 자동차로 왔다갔다 하며 찾으려니 숨바꼭질하듯 지나치기만 한다. 몇 사람에게 물으니 중심도로에 큰 나무가 있는 집이라고 일러준다. 길거리의 가로등, 벤치, 상점들의 모양과 색채가 예술가의 영향인 듯 예사롭지 않다.

드디어 그 앞에 섰다. 처마 위에는 무성하게 들꽃과 풀이 자라고, 지붕을 뚫은 나무 한그루는 우뚝 솟아올라 마침 불어오는 미풍에 푸르른 날개짓을 하며 ‘여기 모두 와서 시원하게 볼일을 보세요!’하며 속삭인다. 이십년 전에 문을 연 공중 화장실은 누구나 대환영이다. 자연에는 일직선이 없으므로 건축물도 자연의 일부처럼 되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입구에서부터 화장실 구석구석까지 표현되었다. 곡선의 기둥과 불규칙한 타일, 군데군데 배치된 부조와 조각품들이 마음을 현란하게 하고… 특히 초록, 파랑, 투명한 재활용 빈 유리병을 이용한 모자이크 같은 채광창들은 성당의 색유리 창처럼 밝고 아름답다. 여기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곳임을 유머스럽게 전달하는 예술가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화장실 오프닝에서 한 그의 말은 한편의 시가 되어 주위를 맴돈다.

It is harmony with beauty and harmony with nature…

small things can bring beauty into our life.

Beauty has an important function.

Beauty is always underestimated.

(1999년 12월)

‘배가 떠나가네, 친구야!’ S는 밖에서 소리친다. 지금 빨리 떠나야 예약한 뱃 시간에 댈 수 있다고 재촉이다. 그러나 나는 벽에 새겨진 꽃을 든 숙녀가 가리키는 안내를 따라, 다시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예술품의 일부가 된다.

볼일을 보며 별을 헤아린다. 별 없는 하늘에 한숨과 울부짖음이 드높게 울려퍼지는 곳, 별이 결코 뜨지 않는 곳이 지옥이라고, 단테는 신곡에서 노래한다. 여기 오는, 여기서 볼일을 보는 모든 이들이 예술이 되어 별을 헤아리길 희망한다.

일생을 환경보호와 인간애를 실천한 프리덴스라히 훈데르트 바서(‘평화로운 땅에 흐르는 백 개의 강’이라는 뜻)의 소망처럼, 사람들이 조금만 더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하늘에는 더욱 더 초롱초롱한 별꽃들이 피어날텐데.

김인숙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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