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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칼럼시드니 한인작가회 ‘산문 광장’

시드니 한인작가회 ‘산문 광장’

[차수희]

인터넷 없이 살아보기

종일 푸른 하늘이어서 빨래를 두 번이나 돌려 널었다. 구름도 한 점 없어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은데 기상청에서는 한 시간 후 폭풍우가 예상된다한다. 아니나 다를까. 맑은 하늘 저편에서 검은 구름이 서서히 몰려오고 있다. 갑자기 새까맣게 변하더니 우르르꽝꽝 천둥 번개 정신을 못 차리게 한꺼번에 쏟아붓는다. 집이 통채로 떠내려가는 줄 알았다. 급기야 작업 중이던 노트북에 인터넷 연결이 안된다는 표시가 뜬다. 혹시나 하고 전화기를 들어 보니 집전화도 먹통이다. 일시적 현상이려니 하고 첫 날은 신경이 안 쓰였다.

다음날엔 76억 세계 인구가 뭐든지 다 공유해야 할 것 같은 인터넷에서 소외될까 싶은 조바심이 났다. 해결하고자 집 전화 고장신고를 했는데 온 동네에 걸쳐 생긴 일이라 5일 안으로 고쳐질 거라는 답이다. 유튜브 강의도, 한국 뉴스도, 궁금한 내용도 바로바로 찾아보던 일들이 일시 정지상태다.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듯 불안이 밀려온다. 늘 하던 일이 없어진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을 안고 일단 도서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갑자기 인터넷이 연결되자 눈앞에 놓인 노트북 속의 장면들이 새로 살아난 듯, 즉각적인 희열을 다시 맛보니 속이 뻥 뚫린다. 알게 모르게 세상과 소통을 이렇게 하고 있었나보다.

길고 지루한 닷새를 참고 기다리기만 하면 내 생활이 원래상태로 돌아갈 줄 알았다. 아침에 눈 뜨면서 잠들기 직전까지 인터넷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요즘 세상 아니던가. 그런데 또 다시 닷새가 더 걸릴거라 하니 이참에 아예 인터넷 없었던 시절로 차라리 돌아가 보기로 하자! 그랬더니 이십여 년 전까지도 익숙했었던 아날로그적인 생활에, 묻혀있던 몸의 무의식이 반응하면서 점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먼저 시시때때로 보던 한국 소식에 대한 궁금증부터 접게 된다. 기차 탈 때는 시간표가 나와 있는 책자로, 궁금한 단어는 사전으로, 모르는 요리는 요리책으로 해결하니 느림의 미학까지 즐길 수 있음에랴. 정원의 꽃들이 더 많이 보이고 손에 책을 들고 있는 시간도 점점 늘어난다. 처음엔 세상과 단절되는 것 같아 안절부절 하다가, 포기하는 순간 맛 본 그 자유로움은 한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신선함이다. 물만큼이나 필수품이라 여겼던 인터넷이 없는 동안, 집에 머물고 있는 시간도 마치 속세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 와 있는 착각이 든다.

이번 장시간 인터넷 불통 사건 덕분에 상상도 못 했던 체험이 내게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다.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켜면 어느 새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는 자신을 쉽게 발견하곤 했었으니. 가짜뉴스 또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에 현혹되어 빠져들다가 수면장애까지 겪어봤다. 예전엔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 하며 부모들이 자녀들의 시청 시간을 제한하기도 했다. 요즘은 잠깐이라도 시간이 나면 동영상이나 게임을 쉽게 접하면서 매우 급한 일이 생기기 전에는 쓸데없이 시간을 없앤다. 얼마나 생각없이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비하는 기회를 모처럼 얻고 나니 열흘 만에 다시 찾아 온 보이지 않은 선에 내 생활을 예전처럼 연결하기가 다소 두렵기까지 하다. 오늘은 기상청 실시간 예보를 찾아보지 않고 산책을 나섰다. 한참을 걷다 무심히 올려다본 하늘은 어느 새 짙은 회색으로 변해있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정겹게 들려온다. ‘삭신이 쑤시는 걸 보니 비가 오려나?’

차수희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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