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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매거진호주를 지도에 올려놓은 탐험가 플린더스 유해, 마침내 발견

호주를 지도에 올려놓은 탐험가 플린더스 유해, 마침내 발견

[호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탐험가 중 한 명이었던 매튜 플린더스(Matthew Flinders)는 40세에 신부전으로 사망한 후 영국 세인트 제임스(St James) 묘지에 묻혔다. 하지만 얼마 뒤 이 묘지가 기차역으로 개발되면서 그의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으나 최근 영국 당국이 추진하는 고속철도 프로젝트 작업 중 유스턴 기차역(Euston station) 지하 구간에서 그의 유해가 확인됐다. 사진은 플린더스의 유해 현장을 발굴하는 고고학자.]

런던 ‘유스턴’ 기차역 ‘HS2 고속철도’ 지하구역 작업 중… 고고학자들 확인

호주 대륙 일주(1801-03년)한 최초의 호주인, 탐험 후 ‘Australia’라는 이름 제안

매튜 플린더스(Matthew Flinders)는 호주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탐험가 중 한 명이다. 1788년 아서 필립(Arthur Phillip)이 첫 영국 죄수선을 이끌고 시드니 코브에 도착, NSW 주를 영국 식민지로 선포하고 초대 총독이 된 이후 약 13년 뒤, 그는 호주 해안을 일주한 후 호주를 세계 지도에 올려놓았던 탐험가였다. 그의 흔적은 호주에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애들레이드에 자리한 플린더스대학교(Flinders University), 남부 호주(South Australia) 주의 플린더스 산맥(Flinders Ranges) 등 그의 이름은 상당히 많이 차용됐다. 호주 탐험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40세의 나이에 사망했으며 세인트 제임스(St James) 묘지에 매장된 것만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년 후 그의 매장지는 사라졌고 역사학자들에게 그의 묘지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그가 사망한 후 216년이 지난 뒤, ‘HS2’ 고속철도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런던 유스턴 기차역(Euston station) 공사 현장에서 대규모 묘지가 발견됐고, 이 발굴 과정에서 매튜 플린더스의 유해가 발견됐다고 지난 주 금요일(25일) 호주와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고고학자들이 확인한 그의 유해는 이제까지 잘 보존된 납 흉갑(lead breastplate) 덕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 현장의 유산 발굴 프로젝트 책임자 헬렌 와스(Helen Wass)씨는 “이곳에서 플린더스의 항해와 관련된 닻이나 선박이라도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면서 “하지만 여기가 그의 무덤이었음을 알게 되어 너무 흥분 된다”고 말했다.

플린더스는 1801년에서 1803년 사이, ‘HMS Investigator’를 타고 해안을 따라 호주를 일주했다. 그의 탐험선에는 호주 원주민 선원 붕가리(Bungaree)도 선원으로 타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호주 대륙을 항해한 최초의 호주인이라는 기록을 얻었다.

2년에 걸친 호주 대륙 항해를 마친 뒤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이 탐험 과정을 기록한 <테라 오스트랄리스로의 여행>(A Voyage to Terra Australis)을 썼고, 이 책이 출간된 다음날,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1814년 7월23일 세인트 제임스 묘지에 묻혔다.

그러나 도시 개발로 그의 무덤이 있는 묘지는 사라졌고, 수년 동안 전문가들은 HS2 프로젝트 구간인 유스턴 기차역 플랫폼 15가 된 곳이 그의 유해가 묻혀 있는 장소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이번 발굴 결과 그의 유해는 유스턴 기차역에서 확인됐지만 플랫폼 15에는 해당되지 않는 곳이었다.

와스씨는 “기록을 보면 그가 여기에 묻혀 있음을 알게 해 준다. 그는 이 장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집에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사망 이후 얼마 안 되어 세인트 제임스 묘지에는 너무 많은 무덤이 생겨났다. 애초 1만6천 개의 무덤으로 설계됐던 이곳이 6만 개의 무덤으로 커진 것이다.

유스턴 기차역은 1840년대 들어 세인트 제임스 묘지 지역으로 확대됐다. 이 개발 과정에서 플린더스의 비석은 제거됐고 그의 유해가 있는 자리 또한 어디인지를 알 수 없게 됐다.

플린더스의 유해가 발굴된 유스턴 기차역은 영국 역사상 최대 인프라 프로젝트 중 하나인 런던과 버밍엄을 연결하는 101억 달러의 ‘HS2’ 연결 지점이다. 이 프로젝트 과정에서 고고학자와 전문가들은 아주 세심한 공을 들여 약 4만 개의 무덤을 일일이 확인했다. 그리고 플린더스의 관에 붙어 있는 납 흉갑을 통해 그의 유해를 찾아낸 것이다.

와스씨는 “고고학자들은 (발굴 과정에서) 매우 엄격한 과정을 거치는데, 일단 이 지역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색깔의 토양이 발견되면 무덤으로 간주하고 확인을 하게 된다”면서 “무덤이라고 추정되는 곳은 손과 발굴 도구로 조심스럽게 흙을 긁어 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녀는 “관의 종류를 알면 유해 주인에 대한 정보가 나올 수도 있는데, 플린더스의 유해는 이곳 묘지의 보다 좋은 위치에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세인트 제임스 예배당이 무덤 너머에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부자였던 사람은 교회에 보다 가까이 묻혔다”고 덧붙였다.

이곳 묘지에는 국제적 경매회사 ‘크리스티’(Christie) 설립자, 미국의 권투선수 빌 리치몬드(Bill Richmond)를 비롯해 이름이 알려진 인사들이 다수 묻혀있지만 그 가운데 플린더스는 가장 유명한 이름이다.

영국에 파견되어 있는 조지 브랜디스(George Brandis) 호주 고등판무관은 “이번 발굴은 호주 입장에서 매우 흥미로운 순간”이라며 “훌륭한 호주 초기 탐험가 중 한 명인 매튜 플린더스의 유해가 호주 건국을 기리는 ‘Australia Day’가 있는 주(week)에 발굴됐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이름을 딴 애들레이드 소재 플린더스대학교 명예 선임연구원인 길리안 둘리(Gillian Dooley) 박사는 “사라졌던 그의 유해 발견으로 그는 마땅히 받아야 할 존경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짧은 생을 마감한 뒤 그는 영국의 한적한 시골에 묻혀 쉬기를 바랐으나 그러지 못했다”며 “이제 그가 원했던 바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고고학자들은 철도 연결을 위한 지하 굴착 작업 과정에서 런던 지하에 묻혀 있는 유적을 발견하곤 했다.

지난 2013년에는 런던 크로스레일(Crossrail) 프로젝트 과정에서 20여 구의 로마인 유골이 발견된 바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골의 주인들이 서기 60년경 부디카 여왕(queen Boudicca)의 반란에 희생된 로마 병사들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부디카 여왕은 켈틱 이세니(Celtic Iceni. 잉글랜드 동부에 살았던 고대 켈트족) 부족으로 서기 61년 잉글랜드를 점령한 로마군에 대항한 인물이며, 영국의 민속 영웅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 2015년에는 리버풀 스트리트 기차역(Liverpool Street station) 지하에서 수천 명의 전염병 희생자 무덤이 발견되기도 했다.

■ 플린더스, 그는 누구인가

탐험가 매튜 플린더스는 1774년 3월 16일 런던 인근 뉴버리(Newbury) 북부의 작은 타운 도닝턴(Donnington)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영국 해군에 입대한 그는 1791년 타히티(Tahiti)를 항해한 윌리엄 블라이(William Bligh) 밑에서 복무했다. 국립 호주박물관(Australian Museum)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 혁명전쟁 와중인 1794년 6월, 영국과 프랑스 해군이 처음이자 가장 크게 맞붙은 ‘Glorious First of June’ 해전에 참전했다.

이듬해인 1795년, 플린더스는 호주 항해를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호주 항해 이후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프랑스 군에 잡혀 6년 넘게 수감됐다가 풀려났다.

영국으로 돌아온 후 4년 뒤, 그는 40세의 나이에 신부전으로 사망했다. 호주 일주 항해를 기록한 <A Voyage to Terra Australis>가 책으로 세상에 나온 바로 다음 날이었다.

국립 호주박물관에 따르면 플린더스는 매우 뛰어난 선원이자 측량사, 항법사, 과학자였다. 프랑스 탐험가 니콜라스 보딘(Nicholas Baudin)이 호주를 일주하는 탐험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보딘에 앞서 호주를 탐험하고자 친한 친구 조지 바스(Gorge Bass)와 함께 출발했다.

1801년 그는 호주에 도착했으며 1789년 자신과 함께 했던 호주 원주민 번역가 붕가리(Bungaree)와 동행했다. 1803년까지 플린더스는 해안을 따라 호주를 일주한 뒤 하나의 대륙으로 인정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역사학자 데이브 헌트(Dave Hunt)씨는 “플린더스는 호주를 일주한 뒤 이 대륙을 ‘Australia’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제안하고 대중화 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호주 본토를 항해하기 전, 먼저 타스마니아로 항해했다.

호주 곳곳에 세워진 플린더스의 동상 옆에는 고양이가 있는데, 그의 애완동물이었던 이 고양이는 그의 탐험 과정에 언제나 함께 했다. 트림(Trim)이라는 이름의 이 고양이는 플린더스가 남아프리카 희망봉(Cape of Good Hope)에서 호주 보타니 베이(Botany Bay)로 항해하던 함선 ‘HMS Reliance’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플린더스는 새끼 고양이 트림이 함선에서 바다로 떨어지자 헤엄을 쳐 배로 다가온 뒤 밧줄을 타고 다시 배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이 고양이에 매료됐다.

그가 묻힌 세인트 제임스 묘지는 얼마 후 런던 유스턴 기차역이 됐다. 유스턴 기차역은 런던의 중요한 기차역 가운데 하나이며, 현재 HS2 고속철도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이다. 고고학자들은 이 작업 현장에서 4만5천 구 이상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1천 명 이상의 고고학자가 참여한 이 작업은 영국에서 이제까지 해 왔던 발굴 작업 중 가장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런던 유스턴 기차역 지하, 플린더스 유해 현장에서 고고학자들이 그의 납 흉갑(lead breastplate)을 들어내고 있다. 플린더스의 유해는 이 흉갑에 새겨진 글자를 통해 확인됐다.

플린더스의 무덤에서 나온 납 흉갑의 글자.

유스턴 기차역의 유해 발굴 현장. 약 4만 여구의 유해를 찾아내는 이 작업은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발굴이기도 하다.

험가 매튜 플린더스의 초상. 1814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플린더스는 탐험을 위한 항해에 애완동물인 고양이와 늘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곳곳에 세워진 그의 동상 대부분에는 ‘트림’(Trim)이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함께 있다.

김지환 기자 jhkim@koreanherald.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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