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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칼럼세상의 모든 행복- NGO 활동가의 현장 이야기(7)

세상의 모든 행복- NGO 활동가의 현장 이야기(7)

[이효실]

똔레샵에서 아침을

캄보디아 시엠립 공항에 도착하였다. 활주로로 내려 공항 건물로 이동하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면서 훅 끼쳐오는 습하고, 더운 공기에 ‘내가 동남아시아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이번 출장은 시엠립 근처에 있는 우리 기관 사업장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총 3개의 사업장을 방문하는데, 이동 시간은 각 사업장 별로 3~4시간에서 5~7시간으로, 이번에도 빡빡한 일정으로 출장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사업장에서 우리가 지원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캄보디아 내 에너지 빈곤층을 지원하기 위한 태양광 에너지 센터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도움이 시급하게 필요한 아이들을 만나고, 그 아이들을 위해 모금을 진행하기 위해 수상가옥마을인 ‘꺼 찌베앙 지역개발사업장’으로 이동하였다. 큰 배는 들어갈 수 없어서 두 사람이 노를 젓는 작은 배를 타고, 몇 시간을 이동하여 마을에 다다랐다. 육지가 없는 생활을 처음 접해보는 나로서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환경이었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수상가옥은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어른만 더 들어가도 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익사하고 싶지 않은 곤충과 벌레들이 차오르는 물과 함께 집안으로 떠올랐다. 별도의 화장실이 없는 수상가옥 한 쪽에서는 볼 일을 보고, 한쪽에서는 설거지를 하였다. 다른 한 쪽에서는 빨래를 하였고, 다른 한 쪽에서는 아이들이 목욕을 하며 놀고 있었다. 미묘하게 흔들리는 집에 있으니 가만히 있어도 멀미가 나는 느낌이었다.

가장 먼저 만난 아이들은 남매였다. 오빠는 8살이었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집 밖을 나온 적이 없다고 하였다. 집에 따로 배가 있지도 않을뿐더러 주요 교통수단이 되는 배를 탈 돈도 없기 때문에 수영을 하지 못하는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이었다. 부모님이 생계를 위해 일용직 일을 나가면, 아이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 그리고 남동생을 돌보며 하루 종일 집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처음으로 마음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세상이 방 한 칸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마음껏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책임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배가 없는 아이들도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이 마을에 꼭 아이들을 위한 통학 보트를 지원해 줘야겠다!!’ 펀드레이저로 모금에 대한 동기 부여와 열정이 저절로 솟아났다.

다음은 10살 라짜나의 집으로 향하였다. 소녀는 수줍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어부였던 라짜나의 아버지는 최근에 일을 하다 물에 빠져 돌아가신 상황이었다. 한센병을 앓고 계시는 어머니는 별도의 치료를 받지 못하여서, 손은 이미 쓸 수 없는 상태까지 악화된 상황이었고, 발 상태도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라짜나는 갑작스럽게 동생과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우리는 라짜나의 하루를 함께하기로 하였다. 새벽같이 일어나 다른 어른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으러 작은 배에 올라탔다. 어른들이 갈무리하기도 버거운, 무겁게 늘어진 그물을 내리는 것이 첫 번째 일이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그물질에 라짜나는 금세 지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본인이 해야만 하는 일임을 알고 있는 아이는 한마디 투정도 없이 묵묵히 일을 해나갔다. 일조량이 좋은 캄보디아의 아침은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내리쬐는 해가 따가웠다. 몇 시간이 지났지만 본격적인 일은 시작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참의 시간을 더 걸려 그물을 내리고 난 후, 배는 전날 그물을 내린 자리로 이동하였다. 이제는 그물을 거두며,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그물은 거칠고, 날카로웠다. 자그마한 소녀의 손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늘고, 때로는 피가 흐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이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손을 물에 담가 피를 씻어내고, 다시 물고기를 떼어 내었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어보는 나를 향해 아이는 빙긋이 웃어 보였다. 간단한 치료를 할 여유도 없이 아이의 손길은 더욱 분주해졌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일을 하기가 더욱 힘들기도 하고, 일이 끝나고 나서도 가정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아이의 하루는 바쁘고, 고단해 보였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라짜나와 함께 집 귀퉁이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집 한켠에는 다정한 인상의 아버지 사진이 놓여있었다. 라짜나의 시선이 아버지의 사진을 향하다가 고개가 떨궈졌다. 아이는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 앞에서는 차마 울 수 없었던 아이는 그렇게 한참을 내 품에서 삶의 서러움과 고단함을 토해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아이를 꼭 안아 주는 것, 그리고 같이 울어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녹록하지 않고, 결코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특히나 개발도상국의 아이들에게 인생은 때론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꽃길만 걷도록 해주고 싶지만, 아이들이 걸어야 하는 길이 꽃길일 수만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한 현실을 인지할 때마다 어른으로서 미안함과 무기력함, NGO 활동가로서의 책임과 부담감을 느낀다. 그래도 세상에 좋은 어른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나와 같은 NGO 활동가도 아닌데 책임과 부담을 느끼며 함께해주는 좋은 이웃들이 많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코 아름답기만 한 세상은 아니지만, 늘 아름다움의 조각을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이라 아직 살만한 것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것이 꿈과 희망이 될 것이라 믿어본다.

이효실 / 국제구호개발NGO ‘굿네이버스’ 호주 사무국장. 후원문의 / 0416 030 381, gnau@goodneighors.org / Homepage. goodneighbors.org.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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