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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칼럼세상의 모든 행복- NGO 활동가의 현장 이야기(5)

세상의 모든 행복- NGO 활동가의 현장 이야기(5)

[이효실 / 국제구호개발NGO '굿네이버스' 호주 사무국장. 후원문의 / 0416 030 381, gnau@goodneighors.org / Homepage. goodneighbors.org.au ]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당신을 지키고 싶어요!

 

필자가 근무하는 기관은 UN 아동권리협약(CRC)과 아동 최우선의 원칙에 입각하여 국내외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고 빈곤과 질병,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국 내에서 총 52개 지부에서 학대 피해 아동보호 및 예방, 심리정서지원, 위기가정 아동 지원 등 전문복지사업을 수행하고 있는데, 처음 입사하고 필자는 지원이 긴급한 아동들을 소개하고 긴급 모금을 진행하는 일을 담당했었다.

 

연말이 가까워지고 처음 아동을 만나러 갔던 날을 기억한다. 우리 지부에서 관리하고 있던 사례였는데, 할머니와 사는 3남매였다. 겨울이 다가오는 시점,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연탄도 넉넉하지 않아, 난방비를 지원해주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할 요량이었다. 좁은 골목을 따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가기를 수차례 반복하니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깥에 작게 부엌이 있고, 작은방 한 칸이 다였다. 4명이 살기에도 복닥복닥한 공간인데, 지부 담당자와 내가 들어가니 움직일 자리도 없이 빡빡해졌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아이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둘째가 5살치고는 참 성숙한 느낌이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찬찬히 살펴보니 남매를 양육하시는 할머니께서 둘째에게 많은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으셨다. 아직 5살밖에 안되었는데, 막내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챙기고, 온수도 나오지 않는 수도에서 쌀을 씻고, 다른 식구들의 식사를 챙기고, 방 청소를 하고, 시간에 맞춰 연탄을 갈았다. 얼마나 자주 했는지, 그 모든 일들이 아주 자연스럽고, 익숙했는데 아이답지 않은 말투와 행동들이 나를 더욱 당황하게 하였다.

 

“슬비는 크리스마스에 뭐 받고 싶어?”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왔으면 좋겠어요. 눈이 오면 아빠가 온다고 했거든요.”

 

받고 싶은 선물을 물어보는 질문에 눈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이, 그리고 눈이 오면 아빠가 돌아오겠다고 한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5살 아이. 어떻게 이 아이가 ‘아이답게’,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는, 기나긴 고민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살기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욱 매서운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봄을 기다리고 있을 즈음 나는 산골 소년 백만이를 만났다. 백만이네는 무려 6형제! 백만이는 학교에 가려면 2시간을 걸어가야 하는 두메산골에 살고 있었다. 백만이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며, 6형제의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는데, 백만이의 아버지께서 갑자기 암에 걸리면서 8명 가족의 생계가 모두 어려워졌다. 아버지의 수술비와 긴급하게 생계를 지원하기 위해 백만이를 만나러 산골 마을을 찾았다. 백만이네 형제들이 해맑은 미소로 나를 맞아주었다. 백만이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동생들의 밥을 챙기고, 고된 농사를 함께 돕는 착한 아들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백만이의 꿈이 요리사여서 동생들의 밥을 챙기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기특하기도 하여라!” 계란 프라이와 김이 반찬의 전부이지만, 아이들은 누구보다 맛있게 한 끼 식사를 누리고 있었다. 무거운 비료를 옮기거나, 농기구들을 청소하고 정돈하는 것은 백만이의 몫이었는데, 힘들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백만이는 티 없이 웃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가 아프셔서 도와드려야 해요. 힘들지 않아요.”

이후 나는 한 요리사를 초대해 다시 한 번 백만이네를 찾았다. 형제들에게 맛있는 식사와 함께 요리사의 꿈이 곱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꿈이 너무 곱고, 소중해서 그 꿈들이 하나하나 알알이 예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커져 나간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때로는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아이들의 상황에 집중하고, 몰입하게 되어 마음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세상에 다양한 종류의 아픔과 슬픔, 고난과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는 지켜주고 싶은데, 많은 아이들이 전혀 준비되지 못한 채 세상의 모진 바람을 맞아야만 하는 것이 못내 마음이 아프다. 희귀 병이나 경제적 어려움 등 상황으로 피치 못하게 겪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개입되어 있는 ‘학대’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한 것 같다.

필자가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완전하지 못하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물질적인 지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면 학대 가해자로부터 아동을 구할 수가 있고, 아이들에게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희망을 줄 수 있다. 때로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다른 어떤 물리적인 것이 아닌 따뜻한 사랑과 관심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다음 세대들이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도록, 그들의 성장과 그 길을 잘 준비해주고 싶은 꿈이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배고픔 없이, 더불어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사람들을 독려하고, 함께 가고 싶다. 뉴스를 보면 세상은 점점 더 나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 나은 모습이 될 수는 있을까? 글쎄, 아무도 미래를 확언할 수 없지만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란 슬비가, 백만이가, 그 사랑을 기억하고 또 다른 사랑을 나누는 어른으로 성장한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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