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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칼럼시드니 한인작가회 ‘산문 광장’

시드니 한인작가회 ‘산문 광장’

[김인숙]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에 서서

‘Rua Augusta!’(아우구스타 거리로!)

택시에 오르자마자 성급하게 외치다시피, 혹은 명령하는 투로 기사에게 재촉한다. 아마데우가 몇 번이나 예찬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에 서고 싶기 때문이다. 호텔에 여행 가방을 잽싸게 던져 놓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빠르게 뛰어가는 마음을 행동으로 따라잡는다. 바로셀로나에서 출발하는 리스본행 포루투갈 항공기가 기체점검으로 두 시간이나 이륙이 지연되어 가슴을 졸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위스 베른의 한 남자는 일상의 일을 던져두고 ‘리스본행 야간열차’(파스칼 메르시어 작)를 탄다. 이 책을 읽고 포르투갈 여행을 생각한 나처럼, 소설 속의 그는 오직 자기 영혼의 떨림에 따라, 57년 만에 처음으로 일탈의 여행길에 오른다.

동료교사와 학생들에게서 문두스(Mundus : 라틴어로 세계, 우주, 하늘이라는 뜻)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레고리우스는 고전과 고어를 사랑하고 가르치는 고전문헌학자이다. 고도근시의 눈을 돌보아주는 안과의사와 늦은 밤(둘 다 불면증이 있다) 전화로 체스를 두는 그, 포루투갈어를 잘 하는 아내와 이혼한, 포르투갈어는 모르는 그. 가난했던 학창시절에는 헤브라이어를 공부하고 욥기를 읽은 후, 동양의 빛을 향해 이스파한으로 떠날 결심을 하였었다. 하지만 뜨거운 모래바람이 두꺼운 안경알을 녹이는 이상한 꿈에 시달리자, 어렵게 구한 페르시아 문법책을 서점에 반환하고 꿈을 접는다.

나의 그 시절은 어떠하였나? 지금은 고향 A시에서 두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동해, 그 때는 멀고 멀었던 그 바다를 그리워 했을까? ‘저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유치환의 ‘깃발’) 설레는 팔랑개비였는지도 모르겠다. 한 때는 경주에서 살아보리라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시가지 여기저기, 우아하게 작은 산처럼 봉긋봉긋 솟아있는 천여 년 전의 무덤들은, 그 경이로움에 고도를 감싼 공기와 먼지에도 사유와 지혜가 떠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옛과 오늘의 교차점에서 꿈꾸는 미래를 구축하리라 다짐했는데 지금 다시 회상해보니, 언제 어디서건 누구에게나 유효한 암시였던 것을.

파리를 거쳐 바로셀로나로 가는 기차 안에서, 마카롱 이스파한을 먹으며 구글 검색창으로 이스파한을 다시 찾아보았다. 신비하고 달콤한 장미향 과자(실제로 장미꽃잎이 과자위에 얹혀있다) 맛처럼, 사막 속에 피어난 페르시아의 빛나는 도시, 그곳을 향한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눈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 청년 문두스를 상상하니 내 마음도 아련해진다

 

그러나 이제 오십대 후반의 그는 리스보아에 도착한다. 포르투게스 청년 아마데우 프라두가 쓴 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욥기처럼 읽으며…. 그리고 나도 아우구스타 거리에 선다. 리스보아는 내가 좋아하는 노랑이다. 노랑과 아주 잘 어울리는 파랑이다. 반짝이는 금빛과 동해의 푸르른 물빛 같은 이스파한의 왕궁과 사원의 돔처럼…. 폭 8m 남짓 연노랑 작은 정방형의 대리석이 깔린 거리에는 여행자와 예술가들이 넘쳐흐른다. 길은 아치문과 노란색 청사에 둘러싸인 넓은 꼬르메시우 광장에 닿고, 그 끝은 바다처럼 보이는 떼쥬 강에 이른다. 저 멀리, 독재자의 다리에서 자유의 다리로 이름이 바뀐 현수교가 석양에 물들고, 강가에서는 음악이 연주된다. 그리고 산에서 온 듯한 붉은 치마의 소녀가 리듬에 맞춰 춤추기 시작한다.

문두스는 프라두와 그의 가족, 조르지, 에스테파니아, 살라자르, 주앙 에사를 통해 그들의 아픈 역사와 사랑을 만나고, 나는 페소아, 까몽이스, 바스코 다 가마, 주세 사라마고를 만나며 리스보아의 일곱 개의 언덕을 오르내린다. 어딘가에서 갑자기 맞닥뜨릴 것만 같은 아마데우의 파란 집, 과거의 프라두와 현재의 문두스가 길목 카페에서 만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두리번두리번 살핀다. 그리고 문어샐러드와 문어스테이크, 해물밥과 정어리튀김, 달달이 에그타르트를 양껏 먹는다. 그런 뒤 ‘꼬끼오’하고 이른 아침 호기롭게 생명의 신호탄을 쏠, 수탉 한 마리를 숄더백에 넣는다.

 

그레고리우스는 야간열차로 귀향하여 새로운 하늘을 이고 살아갈테지. 나는 긴긴 시간 비행을 하며 돌아오는 여정에서 책방에 들른다. 의식의 손길을 따라 한권의 책을 집어든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얀 마텔 작)이다.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언젠가 불쑥 리스보아에서 뒤로 걷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다. 파두의 슬픔과 한, 웃음이 터지는 익살꾼을, 이베리아 코뿔소를 따라간 침팬지를 그려 볼 수 있겠다.

친구여, 그대도 불면증이나 어떤 이유로 잠 못드는 밤이 있다면, 문두스의 안내로 포르투갈을 여행하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에서 아마데우를 만나보라.

김인수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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