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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칼럼시드니 한인작가회 ‘산문 광장’

시드니 한인작가회 ‘산문 광장’

[차수희]

빨랫줄에 새 두 마리

 

어린 새의 울부짖음이 애처롭다. 읽고 있는 책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서 다음 장으로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은 새소리의 강도가 좀체로 줄어들지 않고 이어지는 까닭이다. 새 울음소리가 독서에 방해도 되려니와 혹시 무슨 사고가 난 것이면 도와줘야 할 것이기 때문에 책을 아예 덮고 뒷마당으로 나가 보았다. 얼추 덩치는 셋 다 비슷해 보인다. 두 마리는 빨랫줄에 앉아 딴 청을 부리는 듯 하고 잔디에 있는 한 마리는 둘을 향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다. 생일 선물로 강아지를 사달라고 몇 날 며칠을 마냥 떼 쓰던 내 아이의 어릴 적 모습과 닮았다.

가만히 지켜보던 한 마리가 땅쪽으로 내려 앉는다. 이렇게 찾아먹는 거라고 시범을 보이는데 감히 빼앗아먹지도 달라지도 못하고 곁을 맴돈다. 먹이를 물어다 주는 시기가 막 지났는지 잡은 벌레를 끝내 입에 넣어주지 않고 먹어버린다. 잠시 조용해지더니 땅 속을 마구 뒤지며 따라 해보지만 찾지는 못하고 또 울기 시작한다. 아무리 울어대도, 모르쇠 하던 부모 새는 야단치듯 시끄러운 새의 부리를 쫀다. 울음을 포기하고 다시 찾기 시작하는데 역시 실패다. 한참 후 그제서야 하는 수 없다는 듯 벌레를 찾아 넣어준다. 허기를 면하니 힘이 났는지 울음소리는 잦아들고 열심히 잔디 속을 뒤진다. 부화 후 6개월쯤 되면 혼자 알아서 먹이를 찾아 먹을 수 있다는 호주까치(Australian Magpie). 일부 개체는 8개월이 되도록 먹이를 보채기도 하지만 대개 이런 생떼는 무시되며 성체와 같은 크기로 자라는데 1년이 걸린다. 부모애가 강하다는 맥파이 가족의 모습을 관찰하다 보니 그 빨랫줄에 풍선을 잔뜩 매달았어야 했던 때가 어제 일 같이 생생하다.

힐즈 호이스트(Hills Hoist)라고 불리는 사각 빨래 건조대. 호주의 아이콘이라 할 만큼 유명하여 시드니 올림픽 폐막식에도 등장했을 정도다. 194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생산되어 옛날에 지어진 집 뒷마당에선 흔히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중간 막대기 하나에 의지한 일자 빨랫줄이 바람에 쓰러지면 옷가지들이 몽땅 땅바닥에 떨어져 애를 먹곤 했었다고. 아내의 이런 빨래 고충을 해결해 주려는 남편의 배려가 낳은 작품이다. 빨랫줄 지지대 중간에 손잡이가 달려 있어 이것을 돌려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고 바람 불면 윗부분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더 빨리 건조된다. 커다란 우산처럼 생겨서 천막 천을 씌운 후 풍선을 매달고 그 그늘 아래 야외용 식탁과 의자를 놓으면 훌륭한 생일 파티 장소로 변신한다. 호주의 여느 가정과 마찬가지로 나도 꽤 여러 해 단골로 사용했다. 그 해에는 집안에서 동물을 키우게 될까봐 강아지 대신 뒷마당에 토끼집을 마련하는 것으로 겨우 마음을 달래주느라 풍선도 더 풍성하게 매달았다. 유난히 많은 친구들을 초대했음은 물론이고 앙증맞은 토끼집을 그 아래 놓았다. 흰색에 검은 점이 있는 토끼가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자 덩달아 으쓱했던 아이는, 애완견 키우기는 당분간 새까맣게 잊어주었다.

매일 해질 무렵 찾아와 나를 불러내는 맥파이 가족의 소리가 귀에 익으니 이젠 반갑기까지 하다. 뒷마당에서 만나는 새 세 마리가 내 가족처럼 느껴지던 날, 식빵을 들고 나가 떼어 던져주며 그들과 쉽게 한 식구가 되었다. 문소리가 나면 어미새가 집 쪽으로 먼저 온다. 조심스레 다가와 먹으며 멀리 있는 아기새를 부른다. 경계하며 어미 곁으로 와서는 빵조각을 따라 먹는다. 하루가 다르게 보채는 소리가 조금씩 줄어들더니 배고파 우는 소리, 식구를 부르는 소리 등 이제 새들의 노래 소리를 구분하게 되었을 때 쯤 더 이상 다복한 세 식구의 모습은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설레임으로 맞이하던 저녁 일과를 보름 넘게 그렇게 하며 내 아이들 어릴 적 올바른 방법을 찾아 양육하느라 애쓰던 때를 되짚어 보았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강아지를 집에 들였다. 그렇게 모질고 단호하게 버텨왔는데, 반려견과 함께 성장기를 보내고픈 간절함을 부모의 방해로 이루지 못하면 그 빈자리는 어른이 되어서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까봐 용기를 내었었다. 지인 집에 찾아가 강아지를 만져보고 구체적으로 예상도 해보고 충분히 준비한 후에야.

 

빨랫줄에 단출하게 앉아 있는 새 두 마리. 이제 보채는 시끄러운 새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새끼를 떠나보내고 홀가분한 모습일진대 그래도 시원섭섭하냐고 묻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족 안에서 태어나고 그 보호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충분히 익혀 성년이 되면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났던 희노애락(喜怒哀樂)의 추억들만 그 빨랫줄에 보이지 않게 걸려있다.

 

차수희 / 수필가, 시드니한인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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