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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칼럼세상의 모든 행복- NGO 활동가의 현장 이야기(3)

세상의 모든 행복- NGO 활동가의 현장 이야기(3)

[이효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기적– 네팔 대지진 긴급구호 활동 이야기 1

 

NGO 활동가로 일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재난’ 뉴스가 나오면 24시간 풀가동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NGO에 입사하기 전 ‘재난’에 관한 뉴스를 접했을 때는, 나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십시일반 작은 정성을 보태며 그네들의 삶이 얼른 회복되기 원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활동가로 일하면서 나에게 ‘재난’은 빨리 회복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넘어, 내가 빨리 “회복 시켜야만하는” 시급하고도, 중요한 [실제]가 되었다.

우리 기관은 각 부서별로 긴급구호 요원을 양성하여, 평소에는 본인의 직무에서 소임을 다하다가 긴급 상황 발생 시 TF(Task Force) 팀을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긴급구호 요원은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며, 이를 통해 응급처치, 긴급구호의 기본 원칙, 물자 배분 등 현장에서 어떻게 활동을 하는지를 비롯하여 필요한 소양을 익힐 수 있다.

긴급구호 요원은 사실 뉴스가 아닌 문자와 이메일로 가장 먼저 재난 알림을 받게 되며, 기본적으로 레드 알림이 오면 언제든 출동할 수 있는 대기 상태가 된다. 재난은 지진, 허리케인, 쓰나미, 홍수 등 자연재해에서부터 내전, 테러와 같은 인재(人災)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한데, 각 재난에 따라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신속하지만, 정확하고 전문적인 활동 수행이 요구된다.

 

평온했던 어느 토요일 오전, 네팔에서 큰 지진이 났다는 소식과 함께 긴급하게 TF 팀이 소집되었다. 네팔은 우리 기관의 현지 사무소도 있는 국가인데, 수도인 카트만두 역시 피해지역이라 현지 사무소를 비롯하여 우리 직원들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 날로 1차 현장조사팀이 파견되고, 긴급구호 대응단이 꾸려졌다. 곧이어 연세 세브란스 병원과 함께 의료팀을 파견하고, 2차로 삼성의료원 의료팀이 파견되었다. 필자는 삼성의료원 의료팀의 코디네이터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크고 작은 여진이 있었던 터라 사실 그 부담이 엄청났었다. 의료진이지만 동시에 일반인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라 현장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안전도 내가 고려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 중 하나였다. 네팔행 비행기를 타고 난 후, 진지하게,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긴급구호 요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요원들은 긴급구호 현장 파견 시, 다 그러한 각오를 가지고 떠난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주 솔직하게 고백하건데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그 치열한 현장을 1%도 모른 채 용감했던 것이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카트만두에 도착하였다. 대학생 때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네팔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자취는 하나도 찾을 수 없이 현장은 폐허가 되어있었다. 멀쩡한 건물은 찾기 어려웠으며, 그나마 멀쩡한 곳도 여진으로 언제 무너질지 몰라 실내 생활이 불가한 상황이었다.

다음 날, 진앙지인 고르카 지역으로 향하였다. 산악 지역이라 여진으로 인한 낙석이 매우 심해 도무지 어디에서도 안전을 담보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내 몸집의 3배만한 바위가 지난 지진으로 도로 한가운데 떨어져 있었다. 모든 인프라가 파괴되고, 도로도 차단되어 그야말로 진앙지 근처의 주민들은 고립된 상태였다. 열악한 도로 사정으로 인해 거북이걸음을 하며 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마을에 들어섰다. 아직 진앙지가 먼, 이곳 마을의 상태 역시 참담하였으며 제대로 된 식당이 있을 리 만무하였다. 하지만 의료 지원을 위해 진앙지로 향해 가고 있는 우리에게 마을 주민들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한 끼를 준비해주었다. 식사를 마칠 즈음 어디에서인가 고함소리와 비명소리, 아이들이 우는소리, 천둥소리와 같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여진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큰 7.4 규모의 2차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땅이 갈라지고, 등 뒤의 그나마 버티고 서있던 건물들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한국에서 태어나 난생처음 ‘지진’이라는 것을 겪으며 마치 땅이 우리를 집어삼키는 것만 같이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기껏해야 10초에서 20초 남짓한 시간이었을 텐데 단연코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순간이었다.

 

잠깐이지만 생과 사의 중간 지점에 서 있던 나는 비로소 재난 현장의 처절함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차 지진으로 모두가 놀란 상태였지만, 일정을 지체할 수 없었다. 원래 베이스캠프로 삼으려고 했던 지역은 이 지진으로 지반이 무너져 더 이상 베이스캠프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급하게, 뒤에 산이 없고, 지반이 안정적인 지역을 찾아 베이스캠프를 꾸렸다. 모든 마을의 인프라가 단절된 상태였기 때문에 수도는 각 마을에 약 2시간 정도만 공급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물은 1.5리터의 페트병 2개뿐! 과연 이 물로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다 씻는 일이 가능할까? 그러고도 반 통이나 물이 남았다면, 이것이 바로 ‘전우애’ 비슷한 것이 아닐런지. 언제 대피해야 할지 몰라 옷은 물론 신발까지 다 신은 채, 땅이 으르렁대는 소리를 들으며 잠 못 들었던 그날 밤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고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전날 ‘국경 없는 의사회’와 미팅을 통해 논의하였던 지역에서 이동 진료소를 진행하기 위해 신속하게 이동하였다. ‘국경 없는 의사회’가 못 들어가는 산악 마을을 우리가 들어가 환자들을 치료하고,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은 헬리콥터로 ‘국경 없는 의사회’ 베이스캠프로 이송하기로 하였다.

이동진료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바쁘고 고된 하루를 마치고 바라본 히말라야의 노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누군가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미소만 짓는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진지하게’ 왜 이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에게 삶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숭고함이라고. 어디서 태어났는지를 떠나서, 부유함이나 가난함과 상관없이,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라도, 모든 이들의 삶은 그러하다고. 그래서 그 숭고한 삶을 지켜주고 싶다고, 할 수 있는 한 힘껏 지키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

 

이효실 / 국제구호개발NGO ‘굿네이버스’ 호주 사무국장. 후원문의 / 0416 030 381, gnau@goodneighors.org / Homepage. goodneighbors.org.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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